검찰과 경찰이 20일 수사권 조정에서 극적 합의를 이뤘다. 합의안의 요지는 검찰이 경찰의 모든 수사를 지휘할 권리(수사지휘권)를,경찰은 자체적으로 수사를 시작할 권리(수사개시권)를 나눠 갖는 것이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검 · 경이 합의한 안을 원안 그대로 의결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겼다.

합의안에 따르면 경찰은 범죄 혐의를 포착하면 자체적으로 수사를 개시 · 진행할 수 있다. 지금도 공안,선거 등 중요 사건을 제외하면 사건의 98%는 사실상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개시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의 자체 수사개시권을 명문화해 경찰을 수사 주체로서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경찰의 복종 의무도 검찰청법에서 삭제됐다. 대신 경찰은 모든 수사에서 검사의 지휘를 통해 통제받도록 했다.

임채민 국무총리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검찰-경찰의 균형과 견제가 가능한 원만한 합의안"이라고 자평했으나 경찰과 검찰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검찰 측은 수사개시권을 내주긴 했지만 지휘권을 확보한 만큼 큰 무리가 없다는 분위기다. 한찬식 대검찰청 대변인은 이날 "검사의 수사 지휘 체계 내에서 경찰의 자율적 수사 개시를 허용하는 것"이라며 "검찰이 '모든' 수사를 지휘한다는 부분은 검찰의 권리를 보장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대검 간부도 "검찰의 경찰 수사 지휘권은 경찰 견제를 위해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문제는 법을 어떻게 적용하고 운영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반면 경찰 측은 "검찰에 대한 복종 의무가 삭제된 것 외에는 실속이 없다"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표면적으로는 검찰이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내주는 대가로 지휘권을 확보하는 등 '기브 앤 테이크'가 이뤄진 듯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르다는 주장이다. 경찰 상하층부 간 온도차도 감지됐다.

박종준 경찰청 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경찰의 수사개시권 확보는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경찰의 주체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 차장은 "합의안의 의의를 전달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도 가라앉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한 경찰 관계자는 "검사에 대한 복종 의무가 사라졌다 해도 검사가 모든 경찰 수사를 지휘할 수 있다면 수사개시권도 큰 의미가 없다"며 "합의안에 따르면 현재 검찰과 경찰의 관계는 전혀 바뀌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했다.

검찰이 지휘할 수 있고 경찰이 시작할 수 있는 '수사'의 범위도 애매모호해 논란이 예상된다. 경찰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수사의 의미에 내사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모든 회의 참석자들이 양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이 말하는 내사 제외는 합의문에 없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검 · 경 수사권 조정회의에서는 임태희 대통령 실장이 "합의가 안 되면 못 나간다"고 다짐을 받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합의 후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가적으로 현안이 되는 것은 소극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청와대가 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고운/홍영식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