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깜짝 발표했던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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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저를 지탱해온 원칙이 처참히 부서졌습니다.
2009년 5월 23일 아침 7시. 수행비서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실장님,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좀 오셔야겠습니다.” 직감적으로 ‘마지막 부름’임을 알았습니다.
원칙이 쓰러졌다는 느낌에 다리가 휘청거렸습니다. 끈적한 후회가 눈앞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모습... 저의 평생을 지탱해 온 저의 원칙이 처참히 부서져 누워 있었습니다.
1982년 여름, 저는 '행동하는 원칙'을 만났습니다.
1982년 여름 변호사 노무현 법률사무소. 그 분을 처음 만났습니다. 첫인상은 남다른 소탈함이었습니다. 연수원 시절에 만난 법조계 선배님들과는 사뭇 다른 사람 냄새나는 법조인 이었습니다. 하지만 학생운동으로 유치장에서 사법고시 합격 소식을 듣고, 연수원 차석의 성적으로도 판사에 임명되지 못한 초임 변호사였던 저는,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아셨는지 그 분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저의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당시 변호사들의 접대 문화와 소개비 관행, 제가 ‘젊은 변호사들이 고쳐 나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떠올렸을 때, 그 분은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었습니다. 1982년 여름, 저는 ‘행동하는 원칙’을 만났습니다.
2002년 11월, 저는 '아름다운 원칙'을 만났습니다.
2002년 11월 노무현 대통령 후보 부산선대본 출범식. 저의 인사말에 이어 그 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오늘 큰 비밀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 그때 저에게 맨 먼저 드는 생각은 ‘나이가 일곱 살이나 많으신 분이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는 표현을 쓰시다니!’였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그 표현이 그런 자리를 어색해하는 저에게 용기를 주시려는 속 깊은 배려임을. 2002년 11월, 저는 ‘아름다운 원칙’을 만났습니다.
2003년 1월, 저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원칙'을 만났습니다.
2003년 1월. 저는 저 자신의 장단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민정수석을 고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니 책임져야 하지 않겠소.” 그 말씀 한마디가 바로 민정수석 발령장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대통령 선거기간 내내, 제가 20년간 만나왔던 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을 발견하고 놀라고 있었던 차였습니다. ‘원칙과 상식’은 20년전 그대로였지만 그 시야와 가슴은 이미 대한민국을 품고 있었습니다. 2003년 1월, 저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원칙’을 만났습니다.
2003년 4월, 저는 '타협 없는 원칙의 타협의 원칙'을 만났습니다.
2003년 4월 2일. 진보진영의 극심한 반대 속에 이라크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대통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대통령이 되는 순간 개인 노무현의 소신을 버렸습니다. 나에게는 오로지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소신밖에 없습니다.” 미국과의 관계라는 국익은 살리면서, ‘사단규모의 전투병’이라는 미국의 요구를 ‘안전한 지역에서 이라크 재건을 지원하는 비전투병’으로 줄이기까지 그 분의 타협과 설득의 노력은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
2003년 4월, 저는 '타협 없는 원칙의 타협의 원칙'을 만났습니다.
2009년 5월, 원칙은 갔지만 우리는 그 원칙을 보낼 수 없습니다.
2009년 5월 23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장, “노무현전대통령께서 오늘 오전 9시 30분 이곳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운명하셨습니다.” 그 날 저의 목소리에는 부서지는 낙엽소리가 났습니다. 그 분과 함께 쓰러지고 싶은 인간 문재인의 마음과 그 위대한 원칙을 이대로 사라지게 둘 수 없다는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의 마음이 서로 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의 마음이 이겼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인 이유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30년을 함께한 동지 문재인이 밝히는 일화가 故 노 대통령을 추모하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문용욱 전 부속실장의 추모글 '모두가 울때, 수행비서는 울 수 없습니다'에 이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추모글이 지난 17일 노란가게에 업데이트 됐다.
노무현 대통령 공식 온라인 쇼핑몰 ‘노란가게’는 다른 온라인 쇼핑몰과 달리 상품 중심으로 메인페이지를 구성하지 않고, 대통령을 모셨던 참모들 인터뷰를 싣는 ‘내마음 속의 대통령’ 코너를 전면에 배치했다. 단순히 기념품만을 파는데 그치지 않고 노 대통령의 신념과 가치를 공유하는 곳이 되기 위해서다.
아울러 노란가게에서 판매하고 있는 문재인 이사장의 저서 '운명'도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다.
두사람의 운명같은 동행에 대한 기록 '운명'.
'운명'에는 문재인의 시각에서 본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증언이 담겨있다. 또 두 사람의 ‘운명’ 같은 30년 동행을 통해서 본 자신의 삶의 발자취에 대한 기록과 함께,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 비사 가운데 처음 공개되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어 발간당시 뜨거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책의 내용중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 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문 이사장이 이인규 중수부장에 대해 "오만하고 거만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자 포털사이트 검색어에는 '이인규'가 장시간 검색어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을 정도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엮은 인터뷰는 2~3주마다 업데이트될 예정이며,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이어 앞으로 안희정 충남지사,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등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다.
노란가게 '운명' 독자 서평란에는 '눈물이 자꾸나서 자꾸 그리워져서 몰랐던 당신을 알게되면서 더욱그리워져...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기기가 힘들다'라는 후기가 남겨졌다.
한형민 노란가게 상무는 "예약판매중인 '운명'에 대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전하고 노란가게 수익금 전액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관리와 재단 운영 등을 위해 쓰여진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이미나 기자 helper@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
2009년 5월 23일 아침 7시. 수행비서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실장님,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좀 오셔야겠습니다.” 직감적으로 ‘마지막 부름’임을 알았습니다.
원칙이 쓰러졌다는 느낌에 다리가 휘청거렸습니다. 끈적한 후회가 눈앞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모습... 저의 평생을 지탱해 온 저의 원칙이 처참히 부서져 누워 있었습니다.
1982년 여름, 저는 '행동하는 원칙'을 만났습니다.
1982년 여름 변호사 노무현 법률사무소. 그 분을 처음 만났습니다. 첫인상은 남다른 소탈함이었습니다. 연수원 시절에 만난 법조계 선배님들과는 사뭇 다른 사람 냄새나는 법조인 이었습니다. 하지만 학생운동으로 유치장에서 사법고시 합격 소식을 듣고, 연수원 차석의 성적으로도 판사에 임명되지 못한 초임 변호사였던 저는,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아셨는지 그 분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저의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당시 변호사들의 접대 문화와 소개비 관행, 제가 ‘젊은 변호사들이 고쳐 나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떠올렸을 때, 그 분은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었습니다. 1982년 여름, 저는 ‘행동하는 원칙’을 만났습니다.
2002년 11월, 저는 '아름다운 원칙'을 만났습니다.
2002년 11월 노무현 대통령 후보 부산선대본 출범식. 저의 인사말에 이어 그 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오늘 큰 비밀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 그때 저에게 맨 먼저 드는 생각은 ‘나이가 일곱 살이나 많으신 분이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는 표현을 쓰시다니!’였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그 표현이 그런 자리를 어색해하는 저에게 용기를 주시려는 속 깊은 배려임을. 2002년 11월, 저는 ‘아름다운 원칙’을 만났습니다.
2003년 1월, 저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원칙'을 만났습니다.
2003년 1월. 저는 저 자신의 장단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민정수석을 고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니 책임져야 하지 않겠소.” 그 말씀 한마디가 바로 민정수석 발령장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대통령 선거기간 내내, 제가 20년간 만나왔던 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을 발견하고 놀라고 있었던 차였습니다. ‘원칙과 상식’은 20년전 그대로였지만 그 시야와 가슴은 이미 대한민국을 품고 있었습니다. 2003년 1월, 저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원칙’을 만났습니다.
2003년 4월, 저는 '타협 없는 원칙의 타협의 원칙'을 만났습니다.
2003년 4월 2일. 진보진영의 극심한 반대 속에 이라크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대통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대통령이 되는 순간 개인 노무현의 소신을 버렸습니다. 나에게는 오로지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소신밖에 없습니다.” 미국과의 관계라는 국익은 살리면서, ‘사단규모의 전투병’이라는 미국의 요구를 ‘안전한 지역에서 이라크 재건을 지원하는 비전투병’으로 줄이기까지 그 분의 타협과 설득의 노력은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
2003년 4월, 저는 '타협 없는 원칙의 타협의 원칙'을 만났습니다.
2009년 5월, 원칙은 갔지만 우리는 그 원칙을 보낼 수 없습니다.
2009년 5월 23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장, “노무현전대통령께서 오늘 오전 9시 30분 이곳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운명하셨습니다.” 그 날 저의 목소리에는 부서지는 낙엽소리가 났습니다. 그 분과 함께 쓰러지고 싶은 인간 문재인의 마음과 그 위대한 원칙을 이대로 사라지게 둘 수 없다는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의 마음이 서로 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의 마음이 이겼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인 이유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30년을 함께한 동지 문재인이 밝히는 일화가 故 노 대통령을 추모하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문용욱 전 부속실장의 추모글 '모두가 울때, 수행비서는 울 수 없습니다'에 이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추모글이 지난 17일 노란가게에 업데이트 됐다.
노무현 대통령 공식 온라인 쇼핑몰 ‘노란가게’는 다른 온라인 쇼핑몰과 달리 상품 중심으로 메인페이지를 구성하지 않고, 대통령을 모셨던 참모들 인터뷰를 싣는 ‘내마음 속의 대통령’ 코너를 전면에 배치했다. 단순히 기념품만을 파는데 그치지 않고 노 대통령의 신념과 가치를 공유하는 곳이 되기 위해서다.
아울러 노란가게에서 판매하고 있는 문재인 이사장의 저서 '운명'도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다.
두사람의 운명같은 동행에 대한 기록 '운명'.
'운명'에는 문재인의 시각에서 본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증언이 담겨있다. 또 두 사람의 ‘운명’ 같은 30년 동행을 통해서 본 자신의 삶의 발자취에 대한 기록과 함께,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 비사 가운데 처음 공개되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어 발간당시 뜨거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책의 내용중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 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문 이사장이 이인규 중수부장에 대해 "오만하고 거만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자 포털사이트 검색어에는 '이인규'가 장시간 검색어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을 정도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엮은 인터뷰는 2~3주마다 업데이트될 예정이며,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이어 앞으로 안희정 충남지사,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등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다.
노란가게 '운명' 독자 서평란에는 '눈물이 자꾸나서 자꾸 그리워져서 몰랐던 당신을 알게되면서 더욱그리워져...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기기가 힘들다'라는 후기가 남겨졌다.
한형민 노란가게 상무는 "예약판매중인 '운명'에 대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전하고 노란가게 수익금 전액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관리와 재단 운영 등을 위해 쓰여진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이미나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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