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작정 앞장서 도입할 게 아니라 미국,일본과 보조를 맞춰가며 검토를 더 했으면 좋았을 텐데…." 올해 국내 상장사와 금융회사에 의무 도입된 국제회계기준(IFRS)을 두고 말이 많다. 21일 기자와 통화한 한 회계법인 관계자도 이용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너무 서둘러 들여왔다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IFRS 도입의 명분이 없는 건 아니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뻗어나가기 위해 국제 표준 재무제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나름의 설득력이 있고,회계 투명성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취지도 일부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충분한 준비 없이 졸속으로 도입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아직 도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급하게 서둘렀다는 비판이 많다. 그 탓에 사전 홍보나 교육이 부족해 투자자들은 재무제표를 해석하기 어렵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회계 전문가들 역시 기업들이 IFRS를 악용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며 불만이 많다.

IFRS와 비슷한 원성을 사는 제도 중 하나가 탄소배출권 거래제다. 국내 산업계는 미국과 일본,중국 등이 도입을 연기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먼저 나설 필요가 없다며 도입 시기를 탄력적으로 결정하자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2015년으로 예정된 도입 스케줄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최근 석유화학업계 최고경영자들과 만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 시기를 최대한 늦출 필요가 있다"는 주문에도 불구하고 일정 조정을 언급하지 않았다.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자는 논리도 '기왕 맞을 매면 빨리 맞아서 체력을 단단히 하자''지구 환경 보호에 우리부터 앞장서자'는 식의 명분론이 대부분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제 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 스스로 발목 잡혔다는 뒷얘기도 있다. 여 · 야당은 국회에 상정된 수정안을 지난달 말 구성에 합의한 기후변화특별위원회에서 다루기로 했다. 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되면 석유화학과 철강업종을 중심으로 국내 산업계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크다. 명분론이 실물경제를 질식시켜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재희 산업부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