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장미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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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7년 겨울 이탈리아 북부 베네딕트 수도원.프란치스코회 소속 수도사 윌리엄이 수련수사 아드소와 함께 도착한다. 수도원장은 수도사 아델모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풀어달라고 청한다. 사건 본질에 다가가는 동안 도서관 출입이 가능했던 수도사들이 잇따라 살해된다.
'책을 훔치다 도서관을 지키는 괴물에게 당했다'는 루머가 퍼지면서 사람들은 공포에 떤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도서관 속 밀실 '아프리카의 끝'에 숨겨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를 읽은 대가였다. 웃음은 저급한 것이라고 믿는 늙은 수도사 호르헤가 금서로 지정한 것도 모자라 책장에 독을 발라 놨던 것이다.
아무도 못읽게 한 곳은 '웃음은 예술이며 식자(識者)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다'라는 대목.'웃음은 인간을 원숭이로 격하시킨다'는 호르헤에게 윌리엄은 말한다. "원숭이는 웃지 않는다. 웃음은 인간에게만 있는 이성의 기호다. "
사실이 드러나자 책을 씹어서라도 없애려는 호르헤와 책을 지키려는 윌리엄이 몸싸움을 벌이는 순간 등잔이 넘어지고 교회는 불길에 휩싸인다. 숀 코너리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이다.
소설은 가상의 책 '시학(Poetics) 2'를 통해 교파 간 이단 논쟁과 마구잡이 종교 재판 및 마녀사냥이 한창이던 14세기 유럽의 역사와 중세 교회 및 주교의 예술에 대한 시각을 전한다. 예술은 본질상 악마적이며 따라서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만든다는 게 그것이다.
금서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성경 또한 금속활자 발명 전까지 일반인은 넘볼 수 없는 교회의 전유물이었다. 인쇄술 발달과 함께 누구나 성경을 읽게 되면서 종교혁명의 불은 댕겨졌다. 책은 이처럼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을 일으킨다.
구글북스에서 영국국립도서관에 소장된 1700~1870년 간행물 25만권을 전자책으로 공급할 것이란 소식이다. 영국국립도서관은 2020년까지 1500만권 장서 대부분을 디지털화한다는 계획이다. 구글은 2006년부터 하버드대 도서관 등 세계 40여개 도서관과 제휴,1300만권의 장서를 전자책으로 보급해왔다.
태블릿PC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지하철에서도 세계 각국 장서를 볼 수 있게 생겼다. 독 묻은 책장을 침 묻혀 넘기다 목숨을 잃을 일도 없다. 부지런히 읽을 일만 남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책을 훔치다 도서관을 지키는 괴물에게 당했다'는 루머가 퍼지면서 사람들은 공포에 떤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도서관 속 밀실 '아프리카의 끝'에 숨겨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를 읽은 대가였다. 웃음은 저급한 것이라고 믿는 늙은 수도사 호르헤가 금서로 지정한 것도 모자라 책장에 독을 발라 놨던 것이다.
아무도 못읽게 한 곳은 '웃음은 예술이며 식자(識者)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다'라는 대목.'웃음은 인간을 원숭이로 격하시킨다'는 호르헤에게 윌리엄은 말한다. "원숭이는 웃지 않는다. 웃음은 인간에게만 있는 이성의 기호다. "
사실이 드러나자 책을 씹어서라도 없애려는 호르헤와 책을 지키려는 윌리엄이 몸싸움을 벌이는 순간 등잔이 넘어지고 교회는 불길에 휩싸인다. 숀 코너리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이다.
소설은 가상의 책 '시학(Poetics) 2'를 통해 교파 간 이단 논쟁과 마구잡이 종교 재판 및 마녀사냥이 한창이던 14세기 유럽의 역사와 중세 교회 및 주교의 예술에 대한 시각을 전한다. 예술은 본질상 악마적이며 따라서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만든다는 게 그것이다.
금서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성경 또한 금속활자 발명 전까지 일반인은 넘볼 수 없는 교회의 전유물이었다. 인쇄술 발달과 함께 누구나 성경을 읽게 되면서 종교혁명의 불은 댕겨졌다. 책은 이처럼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을 일으킨다.
구글북스에서 영국국립도서관에 소장된 1700~1870년 간행물 25만권을 전자책으로 공급할 것이란 소식이다. 영국국립도서관은 2020년까지 1500만권 장서 대부분을 디지털화한다는 계획이다. 구글은 2006년부터 하버드대 도서관 등 세계 40여개 도서관과 제휴,1300만권의 장서를 전자책으로 보급해왔다.
태블릿PC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지하철에서도 세계 각국 장서를 볼 수 있게 생겼다. 독 묻은 책장을 침 묻혀 넘기다 목숨을 잃을 일도 없다. 부지런히 읽을 일만 남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