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정치권발(發) '찬바람'에 바짝 얼어붙고 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가 22일 정치권의 감세 철회와 반값 등록금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의 지난 21일 기자간담회 발언을 문제 삼아 국회 출석을 요구하기로 한 데다 환경노동위원회는 한진중공업 노사분규와 관련,조남호 회장과 노사 대표를 청문회에 부르기로 의결했기 때문이다.

재계는 이날 열린 두 상임위원회에서 쏟아진 여야 의원들의 발언 수위가 상당히 강경했다는 점에 불안해하고 있다. 두 가지 현안이 공교롭게 같은 날 겹치면서 자칫 정치권과 재계가 각을 세우는 것으로 비쳐질까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허 회장의 발언은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포퓰리즘을 지적한 것일 뿐인데도 국회로 불러 발언 경위를 따져 묻는다면 누가 건전한 비판을 하겠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재계 군기잡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이날 재계를 향한 여의도 국회 분위기는 차가웠다.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은 지경위 전체회의에서 허 회장은 물론 중소기업중앙회장,소상공인연합회장이 출석하는 청문회를 지경위 차원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고 여야 합의가 이뤄졌다.

정 의원은 허 회장의 법인세 추가 감세 반대 언급과 관련,"상장 대기업들의 사내 유보금이 2003년도 39조원에서 지금은 무려 85조원에 이른다"며 "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얘기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대기업의 MRO(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 시장 독식을 비롯해 납품단가 후려치기,기술 및 인력 탈취,불공정 하도급 거래 강요 등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국회와 정부에서 동반성장 정책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서도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에 대한 비판 발언이 이어졌다. 참고인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 김형오 한나라당 의원은 "조 회장이 해외 출장 때문에 국회에 참석할 수 없다고 통보해 왔는데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전직 국회의장이 해당 상임위에서 발언한 것은 이례적이다. 김 의원은 "노조의 불법 파업이나,폭력적 행위에 한번도 눈감아준 적이 없는 친기업적인 시각을 가진 나도 이 문제로 조 회장에게 수십 번이나 대화를 요구했지만,전화 연결조차 거부했다"며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재계는 정치권 기류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전경련은 국회가 허 회장 출석을 요구한 의도가 뭔지 파악하는 데 비상이 걸렸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정부의 경제정책이 낙제점을 면한 수준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가 국회에서 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허 회장이 어제 기자 간담회 때 발언 수위를 최대한 정제했는데 그 정도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업을 몰아붙이는 분위기를 만들면 할말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것이냐"며 허탈해했다.

박종남 대한상의 상무는 "국회가 개별 기업의 노사문제에까지 직접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조재희/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