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 뒤집어 읽기] '소비의 궁전' 백화점…돈으로 행복을 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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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소비시대의 유통 변화
1852년 파리에 '봉 마르셰' 첫 탄생
중산층 겨냥 "당신도 상류층 될 수 있다"
도심서 화려함으로 '모방 욕망' 자극
1852년 파리에 '봉 마르셰' 첫 탄생
중산층 겨냥 "당신도 상류층 될 수 있다"
도심서 화려함으로 '모방 욕망' 자극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결핍의 시대였다. 흉년이 들면 귀족이든 하층민이든 배고픔에 시달렸고,공업 생산도 사회 전체의 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의 일이다. 기계화된 공장에서 대량생산이 이뤄져 물품이 넘쳐나게 됐다. 예컨대 기성복 생산은 1890년부터 1900년 사이 두 배로 늘어났고,1914년이 되면서 또다시 두 배 증가했다. 이제 역사상 처음으로 중산층을 넘어 노동계급 상층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재가 보급됐다. 대중소비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업과 유통 역시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대도시에서 다양한 상품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데는 구둣가게처럼 한 가지 상품만 파는 소규모 가게,길거리에서 좌판을 벌여놓고 상품을 파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백화점이었다.
흔히 역사상 최초의 백화점으로 치는 것은 1852년 파리에서 문을 연 봉 마르셰(Bon Marche)였다. 창업주인 아리스티드 부시코는 당시로서는 아주 새로운 개념의 판매 방식을 만들어냈다. 큰 빌딩 전체를 거대한 소매상점의 복합체로 만들어 부문(department)별로 소비품을 모아놓고 팔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서 '백화점(department store)'이라는 말이 생겼다.
대량으로 물품을 들여와서 판매하니 일반 소매점보다 가격이 15~20% 정도 저렴했다. 가격은 고정돼 있었다. 이 역시 당시에는 아주 새로운 현상이었으니,일반 시장에서는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아 상인과 손님 간에 값을 놓고 흥정을 벌였다. 게다가 부시코의 백화점에서는 반품과 교환이 자유로웠는데,이 또한 매우 특이한 일이었다. 이런 특징들을 갖춘 백화점은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봉 마르셰가 개점한 1852년 50만프랑이었던 판매액은 1860년에 500만프랑,1870년에는 2000만프랑으로 뛰었다.
그 뒤를 이어 다른 백화점들이 줄줄이 생겨났다. 파리에 라파예트와 프렝탕,런던에 휘틀리,해로드,셀프리지,베를린에 베르트하임,도쿄에 미쓰코시,뉴욕에 스튜어트,필라델피아에 워너메이커,상하이에 융안(永安) 등이 들어섰다. 20세기 초가 되면서 캐나다,브라질,멕시코,호주,남아프리카,터키 등 세계 각지에 백화점이 생겨났다.
이 백화점들은 나라를 넘어 대개 비슷한 면모를 보였다. 그 특징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화려한 건물에 최신 기술을 이용해 멋있는 분위기를 자아내서 소비의 궁전으로 꾸민다는 것이었다. 1927년에 개장한 뉴욕의 김벨 백화점에는 엘리베이터가 27군데나 설치돼 있었다. 이보다 약간 늦은 1931년에는 서울에도 종로 거리에 화신백화점(和信百貨店)이 설립됐는데,화재 사건 이후 1937년에 건물을 다시 지을 때는 국내 최고인 6층 건물에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다.
대량생산과 대중소비 시대에 중요한 점은 봉급생활자들 스스로 그런 상품을 필요로 한다고 확신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중절모나 비단 슈미즈를 소유하면 지위가 올라가고 그만큼 행복해진다고 설득해야 했다. 여기에서 광고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백화점 소유주들은 소비재에 대한 욕망을 '창출'하기 위해 그야말로 엄청난 신문광고 공세를 펼쳤다. 20세기 초에 신문은 거의 백화점 광고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백화점이 주요 타깃으로 상정한 사람들은 우선 중산층이고 다음에는 이들을 뒤따르려는 노동계급 상층이었다. 진짜 최상층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상 치수를 파일로 간직하고 특별 고객 관리를 하는 전문 상점에서 옷을 맞췄다.
하층민에게 백화점 상품은 아직 그들의 수준을 넘는 것이었다. 백화점 운영자들로서는 이 중간에 위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비를 부추기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러기 위해 중산층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다. 예전에는 자신의 신분에 맞지 않는 의복을 입는 것을 엄격히 금지해서 귀족이 아닌 사람이 화려한 레이스를 사용하기만 해도 벌금을 물렸다.
이런 규범들이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상류층을 모방하려 했다. 백화점 상품은 최고급품은 아니지만 대신 유행에 민감한 신상품이었다. 백화점은 사람들에게 시대에 뒤처지지 말고 패션에 따르도록 부추겼다. 특히 아이들을 위해 돈을 쓰도록 유도했다. 대부분은 자기 아이들만은 자신들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원했다. 아이들이 장래 상류층이 되기를 바라던 사람들은 아동용 의복이나 가구에는 관대하게 돈을 썼다.
또 한 가지 특기할 점은 소비를 결정하는 중요한 주체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시장은 여성들이 마음 놓고 다니기에는 다소 위험하고 불결한 곳이었다. 여성들이 점차 살림의 주도권을 잡고 소비품도 직접 고르는 시대에 백화점은 깨끗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하고,또 여성 판매원을 많이 고용해 여성 고객을 응대하려 했다. 독일에서는 1907년에 백화점 수가 200개가 됐는데,여기에서 일하는 피고용인의 80%가 여성이었다.
대중소비 시대에 사람들의 가치 체계는 점차 바뀌어 갔다. 이제는 사람을 판단할 때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무엇을 소유하는가'가 점차 중요한 지표가 됐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지는 않더라도,돈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도 않았다. 20세기 초반에 백화점은 자본주의 시대의 삶의 방식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공간이었다.
주경철 <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
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의 일이다. 기계화된 공장에서 대량생산이 이뤄져 물품이 넘쳐나게 됐다. 예컨대 기성복 생산은 1890년부터 1900년 사이 두 배로 늘어났고,1914년이 되면서 또다시 두 배 증가했다. 이제 역사상 처음으로 중산층을 넘어 노동계급 상층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재가 보급됐다. 대중소비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업과 유통 역시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대도시에서 다양한 상품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데는 구둣가게처럼 한 가지 상품만 파는 소규모 가게,길거리에서 좌판을 벌여놓고 상품을 파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백화점이었다.
흔히 역사상 최초의 백화점으로 치는 것은 1852년 파리에서 문을 연 봉 마르셰(Bon Marche)였다. 창업주인 아리스티드 부시코는 당시로서는 아주 새로운 개념의 판매 방식을 만들어냈다. 큰 빌딩 전체를 거대한 소매상점의 복합체로 만들어 부문(department)별로 소비품을 모아놓고 팔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서 '백화점(department store)'이라는 말이 생겼다.
대량으로 물품을 들여와서 판매하니 일반 소매점보다 가격이 15~20% 정도 저렴했다. 가격은 고정돼 있었다. 이 역시 당시에는 아주 새로운 현상이었으니,일반 시장에서는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아 상인과 손님 간에 값을 놓고 흥정을 벌였다. 게다가 부시코의 백화점에서는 반품과 교환이 자유로웠는데,이 또한 매우 특이한 일이었다. 이런 특징들을 갖춘 백화점은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봉 마르셰가 개점한 1852년 50만프랑이었던 판매액은 1860년에 500만프랑,1870년에는 2000만프랑으로 뛰었다.
그 뒤를 이어 다른 백화점들이 줄줄이 생겨났다. 파리에 라파예트와 프렝탕,런던에 휘틀리,해로드,셀프리지,베를린에 베르트하임,도쿄에 미쓰코시,뉴욕에 스튜어트,필라델피아에 워너메이커,상하이에 융안(永安) 등이 들어섰다. 20세기 초가 되면서 캐나다,브라질,멕시코,호주,남아프리카,터키 등 세계 각지에 백화점이 생겨났다.
이 백화점들은 나라를 넘어 대개 비슷한 면모를 보였다. 그 특징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화려한 건물에 최신 기술을 이용해 멋있는 분위기를 자아내서 소비의 궁전으로 꾸민다는 것이었다. 1927년에 개장한 뉴욕의 김벨 백화점에는 엘리베이터가 27군데나 설치돼 있었다. 이보다 약간 늦은 1931년에는 서울에도 종로 거리에 화신백화점(和信百貨店)이 설립됐는데,화재 사건 이후 1937년에 건물을 다시 지을 때는 국내 최고인 6층 건물에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다.
대량생산과 대중소비 시대에 중요한 점은 봉급생활자들 스스로 그런 상품을 필요로 한다고 확신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중절모나 비단 슈미즈를 소유하면 지위가 올라가고 그만큼 행복해진다고 설득해야 했다. 여기에서 광고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백화점 소유주들은 소비재에 대한 욕망을 '창출'하기 위해 그야말로 엄청난 신문광고 공세를 펼쳤다. 20세기 초에 신문은 거의 백화점 광고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백화점이 주요 타깃으로 상정한 사람들은 우선 중산층이고 다음에는 이들을 뒤따르려는 노동계급 상층이었다. 진짜 최상층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상 치수를 파일로 간직하고 특별 고객 관리를 하는 전문 상점에서 옷을 맞췄다.
하층민에게 백화점 상품은 아직 그들의 수준을 넘는 것이었다. 백화점 운영자들로서는 이 중간에 위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비를 부추기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러기 위해 중산층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다. 예전에는 자신의 신분에 맞지 않는 의복을 입는 것을 엄격히 금지해서 귀족이 아닌 사람이 화려한 레이스를 사용하기만 해도 벌금을 물렸다.
이런 규범들이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상류층을 모방하려 했다. 백화점 상품은 최고급품은 아니지만 대신 유행에 민감한 신상품이었다. 백화점은 사람들에게 시대에 뒤처지지 말고 패션에 따르도록 부추겼다. 특히 아이들을 위해 돈을 쓰도록 유도했다. 대부분은 자기 아이들만은 자신들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원했다. 아이들이 장래 상류층이 되기를 바라던 사람들은 아동용 의복이나 가구에는 관대하게 돈을 썼다.
또 한 가지 특기할 점은 소비를 결정하는 중요한 주체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시장은 여성들이 마음 놓고 다니기에는 다소 위험하고 불결한 곳이었다. 여성들이 점차 살림의 주도권을 잡고 소비품도 직접 고르는 시대에 백화점은 깨끗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하고,또 여성 판매원을 많이 고용해 여성 고객을 응대하려 했다. 독일에서는 1907년에 백화점 수가 200개가 됐는데,여기에서 일하는 피고용인의 80%가 여성이었다.
대중소비 시대에 사람들의 가치 체계는 점차 바뀌어 갔다. 이제는 사람을 판단할 때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무엇을 소유하는가'가 점차 중요한 지표가 됐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지는 않더라도,돈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도 않았다. 20세기 초반에 백화점은 자본주의 시대의 삶의 방식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공간이었다.
주경철 <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