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팽성읍 안정리,농성(農城)으로 가는 길옆 들녘엔 엊그제 모내기한 벼들이 벌써 푸릇푸릇하다. 이제 곧 초벌 김매기가 시작될 것이다. 어디선가 논맬 때 부르는 민요 얼카덩어리 한 대목이 들려올 듯하다. '우리의 인생은/ 초로라고 하는데/ 얼카덩어리/ 백자천손/ 곽분양도/ 죽어지면은/ 허사로구나. '

◆'얼카덩어리' 농요 울려 퍼지던 충적평야

대숲을 바라보며 동문지를 통해 찰흙을 층층이 다져 쌓은 판축 성벽 위로 오르자 온통 붉은빛을 자아내는 토성이 눈앞에 펼쳐진다. 테니스장 크기만한 앙증맞은(?) 성이다. 이 성을 쌓고 나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 초기 국가의 족장 모습을 떠올리며 평택향교를 거쳐 팽성읍객사에 닿는다.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는 중대청과 중앙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했던 동 · 서헌을 합쳐 9칸 크기의 본채가 나그네를 맞는다. 왕조가 벌써 끝난 줄 모르는 문간채와 중대청이 지붕 양 끝에 용머리조각을 얹은 채 관청 건물의 위용을 과시하며 허세를 떨고 있다.

소샛들 등 비옥한 충적평야가 많은 평택은 농사와 함께 농악이 발전해 온 곳이다. 평택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나호)의 못자리인 전수관을 찾아 평궁리로 발길을 옮긴다. 들 가운데 외따로 형성된 평궁리는 예부터 지신밟기,두레굿 등이 발달한 마을이다.

평택농악 예능보유자인 김용래 선생(71)은 소박한 모습이다. 옛날 우리 농부들은 모두 저렇게 가슴속에 뜨거운 신명을 감추고 살았다. 사당패들의 근거지였던 안성 청룡사와 가까운 탓인지 평택농악은 두레 농악과 걸립패 농악의 성격을 함께 띠고 있는데 특히 판굿의 진풀이가 다양하고 화려하다. 특히 어른의 목말을 탄 아이가 춤을 추는 무동놀이는 보는 이들을 조마조마하게 하면서 절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조선 최고 '안티 유발자'와 '건국 종결자'

대동법시행기념비를 찾아 평택 시내 원소사 마을로 향한다. 조선시대 나그네를 위한 국영여관 원(院)이 있었던 곳이다. 효종 2년(1651)에 세운 이 비의 정식 이름은 '김육대동균역만세불망비'다. 충청감사였던 김육이 대동법을 시행한 것을 기리는 공덕비다. 은유의 일종인가. 비몸을 지고 있는 받침돌의 거북이 해학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원균(1540~1597) 장군의 묘를 찾아 도일동 하리 뒷산을 오른다. 장명등과 무인석,망주석이 묘를 지키고 있다. 임진왜란 때 수군 절도사였던 원균은 칠천량해전(1597년)에서 전사했다. 1603년 임진왜란 · 정유재란의 공신을 선정할 때 선무공신 2등에 책록됐다. 그러나 "패전을 이유로 공을 깎지 마라"는 선조의 지시에 따라 1등으로 책정돼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에 추증되고 원릉군에 추봉됐다. 선조가 과도하게 원균을 편든 것은 아마도 자신의 허물을 감추려는 방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균은 사후에 수많은 '안티'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순신 등 임진왜란 때 순국한 인물들을 꿈이라는 형식을 빌려 비판하는 윤계선(1577~1604)의 고전소설 《달천몽유록》에서조차 그는 한낱 조롱거리일 뿐이다. 애마총에 들른 후 사당인 '원릉군 사우'로 올라간다. 영정은 수많은 '안티'를 담당하기엔 너무 유순한 얼굴이다. 원균을 비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원균처럼 비겁하지 않게 사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삼봉집》 목판과 정도전 사당이 있는 진위면 은산리로 향한다. 봉화 정씨 집성촌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문헌사로 올라가자 고종이 하사한 유종공종(儒宗功宗)이란 현판이 보인다. '유학의 종장이자 조선건국의 공이 으뜸'이라는 뜻이다.

삼봉 정도전(1342~1398)은 과전법을 시행함으로써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고 《조선경국전》을 편찬해 통치체계를 세운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이다. 각 궁궐과 전각의 이름을 짓는 것까지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그렇게 잘나가던 그는 서자인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고 이복형들을 죽이려 했다는 이유로 제1차 왕자의 난(1398) 때 참살당하고 만다. 1865년(고종 2년)에야 문헌이라는 시호와 편액을 받음으로써 신원이 됐다.

삼봉기념관에 전시된 삼봉의 유품과 친필병풍,《삼봉집》 목판들을 돌아보고 맞은편 산기슭에 있는 정도전 묘(가묘)를 향해 오른다. 마을과 경부고속도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한미한 출신 성분과 오랜 유배생활이 그의 애민 사상을 심화시키고 왕권과 신권이 조화된 정치를 꿈꾸게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상의 본질은 불가능이다. 애초부터 실패의 여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지식인 사회 참여의 빛과 그림자를 생각하며 무봉산 만기사로 향한다.


◆불교에 귀의한 박헌영의 아들

황새마들과 건는들의 어린 벼포기들에 마음을 물들이며 키 작은 버드나무와 각종 수생식물이 아름다운 공생의 세계를 연출하는 진위천에 닿는다. 조선 전기에 지은 진위향교 대성전이 진위천을 굽어보며 사색에 잠겨 있다. 18세기 건축기법을 잘 보여주는 앞면 3칸 · 옆면 3칸 크기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고려 태조 25년(942)에 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만기사에 이른다. 1994년에 지은 대웅전 안에는 시상식에 참석하는 여배우처럼 가사를 어깨에 반만 걸친 여래좌상(보물 제567호)이 결가부좌를 틀고 있다. 개금을 했지만 철불 특유의 당당한 불신과 단정한 얼굴이 고려 불상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비례가 알맞아 안정감있게 보이지만 옷주름이 도식적인 게 흠이다.

이곳 만기사 주지인 원경 스님은 남로당 지도자 박헌영(1900~1956)의 아들이다. 스님을 만나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의 편린을 듣고 싶었지만 불쑥 찾아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어서 그냥 절을 나선다. 운 좋게도 사천왕문에서 우연히 스님을 만났다. 속세의 파란곡절과 원망을 여읜 원만하고 후덕한 인상이다. 사진 촬영을 요청했더니 흔쾌히 응해주더니 작년에 펴낸 시집 《못다 부른 노래》까지 선물로 주신다.

자신을 돌봐주던 한산 스님이 글을 쓰면 화를 당할 수 있으니 글을 쓰지 말라고 했지만 어릴 적 백석의 시를 읽으며 품었던 시인의 열망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써왔던 시들을 오랜 지기인 김지하 시인의 권유로 엮은 것이다. 서문 격인 '나의 이야기'를 읽는다. 어린 원경 스님은 박헌영이 잠적한 후 어머니 정씨와도 헤어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아버지는 겨우 6번 잠깐 만났을 뿐 어린 시절의 그를 돌봐준 사람은 김삼룡과 이주하였다.

10세(1949년) 때 한산 스님을 만나 화엄사에서 출가한 이래 안성 청룡사,여주 신륵사를 거쳐 1995년부터 만기사 주지로 주석하고 있다. 박헌영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은연중 '자기검열'로 작용했던 것일까. 230여편 시의 주류는 자연을 노래한 것이었다.

'이쁜이는 혁명가 아버지 찾아 일본으로 갔는데/ 산이 높더냐 물이 깊더냐/ 내 검은 머리 백발이 되도록 영영 돌아오지 않았네/ 나는 그를 찾으려고 천신만고 온 세상 다 돌았건만/ 나의 민들레꽃은 정녕 찾지 못했네.'(시 '민들레꽃 2' 부분).

잃어버린 자아 혹은 소(牛)를 찾고 싶은 게 어찌 스님뿐이겠는가. 나그네 역시 소를 찾아 기우귀가(騎牛歸家 · 소를 타고 깨달음의 세계인 집으로 돌아오다)하고 싶음이여.

한약재로 비린내 없앤 고등어 과메기 맛 일품
폐교가 문화공간으로…오붓한 하룻밤 캠핑!

[맛집]

'뜨겁게 익은 밥을 먹으며 생각한다/ 밥은 왜 밥일까/ 하고많은 말들 중에// 밥,하고 말하고 나면/ 입이 꽉 다물어진다// 그렇다,밥은 삶의 시작이자 끝이므로/ 모든 밥에는 치열의 냄새가 나므로/ 어머니 뭉긋한 생이 찐득하게 배어 있으므로// 어떤 군말도 수사도 필요 없을 만큼/ 위대하고 눈물겹고 무궁하고 지순하니/ 누구도 토달지 말라/ 한 그릇의 밥! 앞에서는" (서숙희 시 '밥에 대한 명상' 전문)

합정초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고복수냉면(031-655-4252)은 순고기육수와 동치미국물이 어우러진 진한 육수 맛을 자랑하는 80년 전통의 평양냉면집이다. 순녹두로 만든 빈대떡과 참숯에 직접 구운 담백한 떡갈비 맛이 일품이다. 경인일보빌딩 1층에 있는 고등어명가(031-658-0331)도 추천할 만하다. 이곳은 아홉 가지 한약재로 비린 맛을 없앤 고등어 과메기로 유명하다.

[여행정보]

폐교된 서탄초등학교 금각분교 8개 교실과 창고를 개조해 회화,도예,목공예,석화공예,웃다리박물관 등을 갖추고 2006년에 문을 연 웃다리문화촌은 전문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공간이자 시민들을 위한 강좌와 체험학습 공간이다. 정기강좌로는 솟대,장승만들기ㆍ평택농악배우기ㆍ천연염색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 일일체험 프로그램으로는 생활도예 손작업과 나무곤충만들기 등이 있다.

책걸상과 난로,풍금,교복 등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물건이 진열된 박물관도 있고 농장에는 타조,꽃사슴,돼지,오리 등 15종류 60마리의 동물이 있다. 운동장 가에는 데크 위에 7동의 텐트를 칠 수 있는 캠핑장이 있다. 캠핑장 사용료 1만5000원.홈페이지(wootdali.or.kr) 참조.(031)667-0011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