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국들을 무력으로 굴복시키고 사상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도량형을 비롯한 다양한 표준을 강제적으로 통일하는 폭력적 '중국화'를 시작했다. 분서갱유와 같은 가혹한 탄압으로 '천하'를 복속시킨 진시황은 사상 최대의 폭군으로 지탄받지만,광대한 영토를 단일한 표준으로 묶어서 협력을 확대 강화하도록 함으로써 이후 강한성당(强漢盛唐)과 오늘날 거대 중국의 토대를 마련했다.
중국처럼 일찍부터 하나가 되지 못한 세계 여러 나라들은 전기기구의 플러그에서부터 자동차 진행 방향에 이르기까지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른 표준을 채택하고 있다. 운전석이 왼쪽인 승용차를 몰고 카페리로 일본에 도착하면 좌측통행의 불편을 겪어야 한다. 미국의 자동차 속도계는 마일로 표시하는데 국경을 넘어서 캐나다에 들어서면 고속도로 표지판은 제한속도를 ㎞로 표시한다. 표준이 난립하면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의 불편함은 커진다.
이처럼 서로 다른 표준을 통일할 필요성을 절감한 각국은 1947년부터 국제표준화기구(ISO)를 결성하고 공동으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세계화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진전되면서 표준의 통일작업도 물리적 규격에서 업무 처리 절차와 제도에 이르기까지 빠른 속도로 확대돼 가고 있다.
개별 국가로서는 자신의 표준이 그대로 글로벌 표준이 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절차와 제도 등은 경제협력의 기본 틀이어서 글로벌 표준은 글로벌 경제협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일단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미국의 표준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이 점을 내세워 미국의 표준을 글로벌 표준으로 삼고 싶어 한다. 이에 반해 다 른 나라들은 세계화는 미국화와는 다른 것이라고 반발한다. 결국 선진국들로 구성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글로벌 표준을 선도할 것이다.
고대 중국의 표준은 폭력적으로 통일됐다. 오늘의 세계는 글로벌 표준을 결국 다자간 협상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유럽이 중국-인도와 대치하는 가운데 교착상태에 빠진 도하라운드가 보여주듯 시간이 꽤 소요될 것이다.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