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들이 후순위(後順位)채권을 경쟁적으로 발행하던 때는 2009년이었다. 당시 저축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쓰나미를 피하기 위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게 발등의 불이었다. 이들은 증자가 여의치 않자 자기자본으로 분류되는 후순위채권 발행에 열을 올렸다.

후순위채권은 투자자들에겐 '달콤한 유혹'이었다. 발행금리가 연 8.5%로 일반 예금금리의 2배 가까운 수준이었고 최저 판매단위도 1000만원이어서 누구나 쉽게 살 수 있었다. 워낙 금리가 높아 경쟁률이 3~4 대 1에 달할 정도였다.

그 당시 경제부장으로서 담당 기자들에게 수없이 당부했다. 후순위채권은 예금보장이 안되는데다 저축은행이 파산했을 경우 채무변제순위에서 일반채권보다 뒤진다는 점을 명시토록 했다. 그래서 '고금리 매력 뒤엔 가시가 있다'는 등의 제목을 달았던 기억이 난다.

저축은행들의 영업정지가 잇따르면서 후순위채권에 투자했다가 원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된 고객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저축은행이 투자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거나 설령 알렸더라도 이미 부실화되고 있는 경영상태를 숨긴 도덕적 해이에 고객들이 치를 떨고 있다.

이들의 사정이 워낙 딱했던지 최근 여야 의원 21명이 2012년까지 한시적으로 저축은행 예금과 후순위채권 전액을 보장해주고 적용시점도 올 1월부터로 소급한다는 내용의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 발의에는 부산저축은행의 영업정지로 민심이 들끓고 있는 부산지역 의원 18명이 동참했고 이진복 한나라당 의원(동래구)이 주도했다.

요즘처럼 어려운 세상에 몇 천만원을 통째로 날린다면 누군들 복장이 터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들을 구제하려는 노력에도 넘어서는 안될 선이 분명히 있다.

후순위채권처럼 고수익을 제시하는 상품에는 그만한 리스크가 있다는 것은 금융의 기본원리다. 이를 무시하고 후순위채권 전액을 보장하는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금자나 저축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금융산업의 근본 질서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것이다. 후순위채권의 위험성을 알고 고금리를 포기한 선량한 예금자들과의 형평성 시비도 두고 두고 문제가 된다. 후순위채권 매입자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싶은 의원들의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시장경제원리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감독당국마저 후순위채권을 구제할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들이 후순위채권의 위험성이나 약관을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고 판매(불완전판매)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20일부터 신고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불완전판매가 확인되면 후순위채를 일반채권으로 바꿔 일부라도 구제해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신호는 더 큰 화를 부른다. 우선 채무 변제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이 다른 금융사에 팔리면 예금보장이 안되는 5000만원 초과 예금과 후순위채권은 파산재단으로 넘어간다. 당연히 변제 순위를 놓고 다툼이 벌어진다. 5000만원 초과 예금자들은 자신들의 몫이 줄어든다며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최종 결정은 법원이 한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후순위채권 매입자들에게 불필요한 기대감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부산저축은행의 영업정지로 드러나고 있는 오너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감독당국의 비리,정치인들의 연루 가능성 등은 저축은행 관리 및 감독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고객들의 피해를 무작정 외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음을 이해한다. 그래도 시장경제원리의 근간을 훼손해선 안된다.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을 불러오는 위험한 선택이다.

고광철 논설위원 / 경제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