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보다 1억 이상 낮춰야 겨우 팔려
상반기 대형아파트 서울·신도시·수도권 '동반 시세하락'

부동산 호황기 때 과감히 대형 아파트를 구입했던 투자자들이 요즘 거래시장의 장기 침체로 울상을 짓고 있다.

대형 아파트는 중소형에 비해 가격 추락 속도가 빠른 데다 웬만한 조건으로는 수요자가 거들떠보지도 않아 시가보다 최소 1억원 이상 낮춰야 겨우 매매가 성사되는 분위기다.

2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 목동, 경기 분당 등 2000년대 중반 투자 수요가 집중적으로 유입된 '인기 지역'에 대형 아파트 매물이 많이 쌓여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추지 않으면 전혀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

양천구 목동 6단지에서 가장 큰 181㎡ 면적의 아파트를 보유한 A씨는 최근 14억원을 받고 이 아파트를 팔았다.

목동 부동산 중개업소들과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18억원대에 거래됐고 부동산정보업체 등이 제시하는 요즘 시세도 15억~16억원에 이르지만 내놓은 지 반년이 넘도록 팔리지 않자 '극약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중개업소와 부동산정보업체의 시세로는 비슷한 가격대의 목동 5단지 181㎡ 아파트도 14억5천만원까지 가격을 낮춰 거래된 사례가 있고, 시가 15억원대 중반 이상으로 평가되는 하이페리온Ⅱ 186㎡도 지난달 14억3천900만원에 거래됐다.

같은 평형대 아파트의 다른 매도인들이 평균적으로 부르는 매도호가보다 최소 1억원 이상 낮춰야만 수요자들이 거래에 응한 셈이다.

이 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는 "매물이 있는데 매수자가 없으니 거래가 전혀 안 이뤄진다.

전체적으로 비수기지만 대형 면적이 특히 심하다"며 "큰 아파트는 정상가보다 1억원 이상 싸게 내놔야만 겨우 거래가 된다"고 전했다.

사정은 대형 면적의 고급 아파트가 많은 다른 지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매시세가 15억~1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강남구 도곡동 아카데미스위트 224㎡는 이달 초 13억3천만원으로 낮춘 가격에 매매됐다.

경기도 분당 서현동의 233㎡ 아파트도 2006년께 14억원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들어서는 10억원대 초반으로 내려갔는데도 거래가 안돼 집주인들이 애를 먹고 있다.

분당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14억까지 갔던 아파트를 지금은 10억에 내놔도 팔리지가 않는다"며 "예전에 비싸게 샀던 투자자들이 여전히 15억원에 가까운 가격을 바라고 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형 아파트가 유독 시장에서 외면을 받으면서 올해 상반기 중소형과 달리 나홀로 가격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114가 지난해 12월31일과 올해 6월17일 전용면적 85㎡ 이상의 중대형 아파트 시세를 비교한 결과 서울은 -0.20%, 수도권은 -0.25%, 신도시는 -0.17%로 모두 마이너스 변동률을 기록했다.

반면 60㎡ 이하의 소형 아파트는 작년 말에 비해 서울 1.48%, 수도권 0.52%, 신도시 1.67% 각각 올랐고, 60~85㎡ 중소형 아파트도 서울 0.40%, 수도권 0.08%, 신도시 0.44% 각각 상승했다.

이에 따라 골칫거리로 전락한 대형 아파트를 보유한 집주인들은 급하게 이사를 가야 하는 사정이 생기면 1억원 이상 가격을 낮춰 '울며 겨자먹기'로 급매물을 내놓고 있지만 '본전 생각'에 가격을 낮추지 않고 버티는 매도자도 아직 많다.

강남 H공인 관계자는 "대형 아파트 매물이 많은데 거래도 안되고 가격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며 "서둘러 팔 이유가 없는 분들은 가격을 크게 내리지 않아 1년 이상 쌓인 매물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firstcirc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