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인적 네트워크와 창업 비화
사카모토 료마(1836~1867).일본 막부 말기의 시코쿠 촌동네 출신 하급 무사다. 1962년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로 널리 알려진 그는 메이지 유신의 기초를 놓은 인물이다. 안으로는 막부체제가 흔들리고,밖에서는 서구 열강이 눈을 부라리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료마는 존왕양이(尊王攘夷)를 외쳤다. 급기야 개화파의 거두를 암살하기 위해 낭인 신분으로 에도에 잠입하지만 자신이 베어버리려던 그 개화사상에 감화를 받는다. 이후 검이 아닌 타협으로 일왕에게 권력이 넘어가는 토대를 마련,일본 근대화의 길을 열었다.
일본 사람들은 유신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만 서른한 살을 꽉 채운 생일날 자객의 칼을 맞고 이슬처럼 사라진 료마를 지난 1000년간 일본 최고의 영웅으로 꼽는다. 최근 11년 만에 방한해 '소프트뱅크 신 30년 비전'을 밝힌 재일교포 기업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에게도 료마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부친이 각혈로 쓰러진 중학생 시절에 만난 소설 《료마가 간다》가 그의 인생을 확 바꿔놓았다. 그는 "료마의 생각과 결단,유연한 태도에서 크게 각성했다"며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가장 어려운 시절,료마로 인해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된 것.
창업 30년 만에 매출 3조엔(42조원)의 거대 기업을 일구었고,이제는 300년 후를 설계하는 그의 오늘을 있게 한 사람은 료마뿐만이 아니다.
《손정의 세계를 로그인하다》는 손 회장과 교분을 이어온 사람들과 손정의 회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전신인 일본소프트뱅크가 창립된 1981년부터 만성간염으로 2년여간 투병했던 1984년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시기의 인적 교류에 초점을 맞췄다. 사사키 다다시 샤프 고문,노다 가즈오 일본종합연구소 회장,구마다 히로미쓰 도라노몬병원 분원장,오쿠보 히데오 일본도쿄상공회의소 특별고문 등 네 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사키 다다시는 손 회장의 평생 후원자다. 그는 미국에서 UC버클리 경제학과를 다니던 손 회장을 처음 만나 음성 전자 번역기 개발에 대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는 "(손 회장은) 성격은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았지만 무엇이든 매우 열심히 하는 청년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샤프 전무였던 그는 손 회장이 유학 시절 개발해 일본에 갖고 온 음성 전자 번역기를 사들이기도 했다.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사용자의 관점에서 제품을 생각하는 것을 높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1981년 9월 규슈에서 일본소프트뱅크를 차린 손 회장이 자금난에 처했을 때는 1억엔의 대출 보증을 서기도 했다. 자신의 퇴직금을 미리 지급받고 집까지 담보로 내준 일화가 유명하다.
구마다 히로미쓰는 손 회장에게는 생명의 은인이다. 소프트뱅크를 설립한 이듬해 만성 B형간염에 걸린 손 회장의 건강을 회복시킨 의사다. 그와 손 회장은 커다란 위험이 따르는 쇼크 요법인 '스테로이드 이탈요법'을 썼다고 한다.
오쿠보 히데오는 손 회장이 사업 외적으로도 끈끈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손 회장이 가족행사에 초청하는 많지 않은 사람 중 하나다. 저자는 "내향적인 오쿠보씨의 성품은 손 회장과 정반대"라며 "서로 보완적인 둘의 성격이 시너지를 발휘해 동업자에서 친구로 발전하고 각각 성공을 이룬 것"으로 진단한다.
노다 가즈오는 손 회장의 멘토다. 그는 손 회장의 매력을 '의연하고 밝은 성품'과 '흘러넘치는 재기'라고 요약한다. 그는 30년 전 처음 사무실로 찾아온 손 회장을 보고 "교수 생활로 다져진 예감을 통해 이 청년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며 "훨씬 대물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해냈다"고 저자와의 대담을 통해 밝히고 있다.
특히 손 회장은 30년 전 '뜻'과 '꿈'의 차이를 들어 가르침을 주었던 그를 요시다 쇼인(메이지 시대의 교육자)에 비유한다. 손 회장은 "꿈은 기분 좋은 바람이지만 뜻은 미래를 향한 치열한 도전이다. 꿈을 좇는다면 제대로 된 남자라 할 수 없다. 높은 뜻을 가져라"는 그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손 회장이 그때 품은 뜻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소프트뱅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손 회장은 "정보 혁명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뜻을 달성하기 위한 각오는 노다와의 대담에 잘 나타나 있다.
"도망가지 않아요. 바위가 있으면 바위를 치우고 걸어가면 됩니다. 아니면 바위 한가운데를 쳐서 쪼개버려야죠.그러면 해결책이 나옵니다. "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