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수출자' 지정은 6000유로어치 이상을 유럽으로 수출하는 업체가 관세혜택을 받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요건이지만 대부분 중소기업은 대비가 돼 있지 않다. 땀흘려 만든 제품을 수출했다가 원산지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면 혜택받은 관세를 모두 물어내야 한다.

관세청 등 관련 부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원산지정보 관리서비스를 지원 중이거나 지원할 계획이지만 기업들이 저마다 사용 중인 ERP(전사적자원관리) 등 기존 시스템과 연계가 쉽지 않아 문제 해결이 간단치 않다.

프레스전문기업 심팩 전지중 대표는 "원산지 인증, 환경영향 인증 등 각종 증명자료와 기업들이 기존에 쓰고 있는 생산 · 구매 · 원가관리 시스템 등과 연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나중에 화를 입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원산지 관리는 완성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부품 수가 많을수록 복잡해진다. 완성품 제조업체 A가 하위벤더로부터 받은 부품이 B,C 두 가지라고 가정하면 B,C 공급자는 각각 부품에 대해 원산지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A는 이를 총괄해 '원산지증명서'를 갖춰 통관절차에서 협정관세적용신청서와 함께 전산제출해야 관세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증명 과정에서 업체들이 따져야 할 게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협정상 기계, 전기전자제품의 경우 한국산으로 인정받으려면 전체 소요부품의 50~55% 이상이 국산이거나, 부품이 결합하거나 새로운 공정이 들어가 품목번호가 변했을 경우 국산으로 본다. 완성품의 부품이 100개 들어갔다고 가정하면 100개 부품에 대해 이 같은 정보처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절삭공구 1145억원어치를 수출한 와이지원(YG-1) 송호근 대표는 "급하게 (원산지관리) 시스템을 구축 중인데 생각보다 어려운 점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수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 등 주요 대기업들은 회계법인을 통해 일찍이 1년여 전부터 준비를 했지만 대부분 중소기업은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플라스틱 사출성형기 전문업체 우진세렉스 관계자는 "수기로 부품 원산지 관리를 하고 있는데 단일 수출품목인데도 만만치 않다"며 "관련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06년 1월~2008년 9월 한 · 아세안,한 · 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등 교역과정에서 원산지증명위반 등으로 특혜관세를 추징당한 건수는 총 1561건, 금액은 101억원에 달한다. 원산지 검증이 훨씬 강화될 한 · EU, 한 · 미 FTA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지금 인증수출 신청을 해도 최소 1주일,많게는 한 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둘러 컨설팅받아야

품목별 혹은 업체별 인증수출자 지정을 받으려면 단순히 시스템 도입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시스템 전담관리자 지정, 관련 업체와 의무교육 이수 등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관련 기관이 통일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각개약진'하며 업무가 중복되는 양상이라 업계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관세청은 중소기업 대상 원산지 관리 프로그램인 'FTA 패스'를 무료 배포하고 있으며 관련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이달 초 급히 공인회계사회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지원사업을 논의했다. 또 지난 13일부터 공인회계사 관세사 등 전문가를 이틀간 중소기업에 파견해 △관세혜택 적용 여부 △HS코드 분류 및 부가가치 판정 지원 △사후 원산지 검증에 대비한 자료보관 방법 등에 대한 집중 컨설팅을 하는 'FTA닥터'사업 참가기업을 선착순으로 접수받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실험적으로 개발한 '주문형 웹기반 소프트웨어 임대서비스(SaaS)'를 통해 중소기업에 맞춤형 원산지 관리 시스템을 지원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일반화된 서비스 모델이 아니라 비용부담이 있는 데다 기능이 불완전해 실제 사용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김연철 비즈머스 대표는 "여러 기관이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경쟁적으로 배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개별 중소기업이 각자 비즈니스 형태에 맞게 업무프로세스 전반을 향후 FTA에 맞춰 미리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