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연간 거래 규모 1경원이 넘는 금융파생상품 시장의 불공정 거래에 '레드카드'를 꺼냈다. 주식워런트증권(ELW) 수사 결과 증권사 대표 12명을 대거 형사재판에 넘기고 해당 법인을 금융감독원에 통보했다. 파생상품 투자와 관련해 전산적 특혜 제공을 사법 처리한 최초의 사례여서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돼 금융 · 증권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검찰은 올해 금융파생상품 분야 비리를 타깃으로 삼고 '11 · 11 옵션쇼크''주식연계증권(ELS) 시세조종' 등의 수사도 함께 진행 중이어서 업계에 '사정 바람'이 계속될 전망이다.

◆"증권사 대표,ELW 불법 지시"

23일 검찰에 따르면 이번에 기소된 12개 증권사 대표들은 ELW 불공정 거래 행위와 관련해 자본시장법 178조1항 위반(사기적 부정 거래) 혐의로 사법 처리됐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은 "대표들이 단순히 범행을 방조한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올라온 서류 결재 등을 통해 사실상 지시했다"며 "지위에 맞는 형사책임을 묻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자본시장법 178조1항 위반 시 하위 직원의 불법 행위에 대해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한 법인 대표를 처벌하는 양벌 규정을 적용하는 대신 공범으로 기소했다.

이들 증권사는 스캘퍼들에게 방화벽 등 보안장치를 거치지 않게 하거나 스캘퍼들의 알고리즘 매매 프로그램이 탑재된 컴퓨터를 증권사 내부 전산망에 직접 연결시키는 방법 등으로 ELW 투자 속도를 일반 투자자에 비해 3~8배 빠르게 해줬다. 이는 스캘퍼들의 대규모 거래로 거액의 수수료 수입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증권사들이 지난해 ELW 수수료로 벌어들인 돈은 711억원에 달했다. 스캘퍼 한 명을 끌어들여 시장 점유율을 1%에서 15%로 올린 사례도 있었다.

◆스캘퍼 위장취업 시키기도

증권사들은 수수료 수익을 노려 전산 속도 향상 외에 각종 특혜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증권사는 외부에 사무실을 내주고 월 1000만원 상당의 임대료를 제공해 줬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와 사무실 집기 비용까지 부담했다. 스캘퍼를 증권사 직원으로 고용하고 내부 전산망을 열어준 사례도 있었다.

증권사는 '위장 취업'한 스캘퍼에게 월 100만원가량의 급여까지 지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스캘퍼들에게 받은 수수료 수억원을 돌려준 케이스도 드러났다. 스캘퍼들이 투자하면 일반 투자자들이 대거 몰려 수수료 수익이 생기므로 스캘퍼에게 수수료를 돌려주고도 수익이 남기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스캘퍼와 증권사는 각각 1000억원 이상의 이익을 봤지만 일반 투자자들은 4143억원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이 부장검사는 "3만명에 이르는 일반 투자자들은 증권사와 스캘퍼 간의 특혜 제공 관계를 전혀 알지 못하고 거래에 참여해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치열한 법정공방 예상

이번 수사는 ELW 관련 불공정 행위에 대해 최초로 자본시장법을 적용,수사한 사례다. 이에 따라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일단 법원은 파생상품시장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추세다. 지난 1월 대한전선과 도이치증권 간의 옵션 관련 시세조종 사례인 '6초의 전쟁' 재판에서 법원은 "한국의 금융시장이 발전하고 주식 파생상품 시장이 크게 확대됨에 따라 파생상품에 대한 이익을 향유할 가능성이 높아 이런 유형의 범죄에 대해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며 양사 직원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검찰이 적용 법조로 든 자본시장법 178조1항이 '귀에 걸면 귀걸이,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지적도 있다. 178조1항은 금융투자상품의 매매와 관련해 △부정한 수단,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 △중요 사항에 관해 거짓을 기록하거나 고의로 누락해 재산상의 이익을 얻는 행위 △거래를 유인할 목적으로 거짓 시세를 이용하는 행위를 처벌토록 하고 있는데,부정한 수단 등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얘기다.


◆주식워런트증권(ELW)

equity linked warrant.주식과 주가지수 등 기초자산을 사전에 정해진 미래 시점과 가격에 사거나(콜옵션) 팔(풋옵션) 수 있는 권리를 나타내는 고위험 · 고수익의 주식 파생상품.예컨대 A주식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1년 뒤에 A주식을 현재 가격으로 살 권리를 1000원을 주고 사는 식이다.

◆스캘퍼

scalper.'슈퍼 메뚜기'로도 불린다. ELW 시장에서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전산시스템을 통해 통상 1일 100회 이상,평균 매매대금 100억원 이상의 초단타 매매를 하는 개인투자자들을 일컫는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