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로부터 회선을 반값에 빌려 저렴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를 이동통신재판매사업자(MVNO)라고 말한다. 정부는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에 대해 일정 비율의 회선 임대를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14개 사업자들이 MVNO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이 중에는 이동통신사 자회사도 포함됐다.

이동통신 자회사가 모기업 회선을 빌려 MVNO 서비스를 할 때엔 문제가 있다. 모기업이 드러나지 않게 지원해준다면 경쟁상대인 MVNO 전문업체들을 제압하고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 정부가 감시한다 해도 표나지 않게 지원하는 것까지 적발하기는 쉽지 않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가 고민에 빠졌다.

방통위는 24일 열린 상임위원 전체회의에서 이동통신사가 자회사를 통해 MVNO 서비스를 하는 것은 MVNO 취지에 맞지 않다며 시장진입을 유예하도록 이통사와 계열사에 요청하기로 했다. 또 현행 법으로는 시장진입 자체를 막을 수 없는 만큼 관련 법 또는 시행령 개정을 포함해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SK텔레콤 자회사인 SK텔링크는 모기업 회선을 빌려 7월 중 MVNO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KT 자회사인 KTIS도 별정4호 사업자로 등록함으로써 SK텔레콤 회선을 빌려 서비스를 제공할 자격을 갖췄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에는 이동통신사가 자회사와 MVNO 서비스 계약을 맺는 것 자체를 제한하진 않는다. 차별적 지원 행위만 금지하고 있다.

SK텔레콤이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할 때 조건을 달긴 했다. 이동통신 서비스를 재판매하도록 제공할 때는 비계열사보다 먼저 계열사에 제공해선 안된다는 조건이다. SK텔레콤은 이미 한국정보통신(3월),아이즈비전(6월) 등과 재판매 계약을 맺었다. 따라서 SK텔링크가 당초 계획대로 다음달 MVNO 서비스를 시작해도 법적으론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도 방통위가 뒤늦게 제동을 건 것은 이통사들이 계열사를 통해 MVNO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취지를 살릴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양문석 위원은 회의에서 "원래 취지가 경쟁을 활성화하자는 것이었다. 드러나지 않게 지원하는 것까지 적발할 수 있겠느냐"면서 "그렇게 못한다면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충식 위원은 "MVNO 도입을 지연시켰던 SK텔레콤이 훈련된 조직(SK텔링크)을 내세워 재판매 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통큰 치킨'이 아니냐"며 "결국 국민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문제는 지난해 MVNO 도입 조항을 포함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때도 제기됐다. MVNO 서비스를 준비 중인 기업 관계자는 "방통위에서 회의할 때마다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MVNO 서비스가 시작되기 직전에야 재검토하기로 한 것은 시험 전일에 벼락치기로 밤샘공부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