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같은 기업들만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는 게 아니지요. 예술인도 많이 배우고 많이 싸워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단독 회고전을 여는 작가 이우환 씨(76 · 사진)는 23일(현지시간) 기자와 만나 "한국에는 조용히 자기 세계만 잘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죽는 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예술인이라면 치열한 노력을 통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아티스트 백남준 씨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이날부터 9월2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 주제는 '무한의 제시(Making infinity)'다. 이씨가 1960년대에 만든 작품부터 최근의 설치 작품 신작 등 90여점을 선보인다. 이씨는 1956년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미술,문학,미학에 몰입하며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현하며 동서양 예술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기 혼자만의 세계와 생각에 빠져 그런 생각을 잘 표현하면 된다는 안이한 자세로는 세계와 교감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씨는 철학과 출신답게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배경을 예술로 융화해낼 수 있는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자기가 지식인이라는 자각을 해야 한다"며 "지식인으로서 싸우고 바로 서려고 노력하지 않고 단순히 손재주를 갖고 어떻게 하려면 빨리 집어치우는 게 낫다"고 말했다.

뉴욕 한복판의 대형 미술관인 구겐하임이 전시관 대부분을 그에게 내주며 3개월간의 대형 전시회를 여는 것도 바로 그의 치열한 작품 세계를 높이 평가해서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알렉산드라 먼로 큐레이터는 이날 "이우환은 '모노하(物派)'로 알려진 일본 아방가르드 운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며 현대미술의 거장이라고 극찬했다. 모노하는 전후 일본에서 진행된 획기적 미술운동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놓아둠으로써 사물과 공간,위치,상황,관계 등에 접근하는 예술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는 이 같은 역사적 움직임에 대한 그의 영향을 조명하는 것이다. 이씨는 자신의 평생에 걸친 예술 모티브가 '만남'이라는 개념이라며 "자연,우주와의 만남이 항상 스스로를 새롭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신선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모티브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