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김중만 씨(57 · 사진)가 트레이드 마크인 레게 머리를 확 잘랐다. 금속 액세서리도 하지 않은 모습이 조금은 낯설게 보였다. 커다랗고 선한 눈매만 아니라면 영락없는 '까도남' 이미지다. 그가 머리를 짧게 자른 건 7년 만이다. 그는 "거추장스럽고,그런 모습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며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 머리를 잘랐다"고 말했다. 24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김점선 그리다》(문학의문학) 출간 기념회장에 들어서면서다.

《김점선 그리다》는 단순한 선,강렬한 원색의 말과 꽃으로 동화적 작품세계를 선보였던 고 김점선 화백의 2주기를 맞아 낸 책이다. 독특한 그림과 자유로운 언행,멋진 에세이들로 기억되는 김 화백과 각별한 친분을 쌓았던 이들의 글을 모았다. 이해인 수녀,정호승 시인,정민 한양대 교수 등 김 화백을 제외하면 17명이다. 작고한 박완서 선생과 장영희 교수가 생전에 김 화백에 대해 쓴 글도 포함돼 있다. 책 제목의 '그리다'는 '그림을 그리다'와 '그리워하다'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김씨는 글에 사진을 더했다. 김 화백이 그린 그림과 형태,이미지 등이 비슷한 작품을 적절히 배치했다. 김 화백의 작품과 어울린 그의 사진 작품은 책을 화보집처럼 보이게 한다.

"김 화백과 같이 작업한 적은 없어요. 서로 다른 시선으로 서로 다른 공간에서 지냈는데 결국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는 길면 6개월에 한 번 보기도 했고 때론 매일 보기도 했어요. 만나서는 미술에 대해서나 그림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해본 적은 없어요. 그냥 사는 얘기나 농담을 하면서 항상 즐거웠죠. 그런데 저는 늘 부럽고 부끄러웠어요. 김 화백은 항상 밝았는데 저는 어두웠거든요. "

그가 여덟 살 위 김 화백을 만난 것은 1977년이다. 어느 날 전시회장을 찾은 김 화백이 작품을 보더니 그냥 반말로 "사진 좋다"고 하더란다. "그때는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제 전시회가 끝난 조금 뒤 한 갤러리에 '점선'이라고 쓰인 그림을 보게 됐어요. 그 그림에 빠졌고,무작정 그림을 그린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었던 거예요. "

김씨는 26일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에 간다. 김 화백을 기리는 '김점선 미술교실'을 열기 위해서다. 42㎡(13평) 교실 두 칸인 이 미술학교는 그가 사재를 털어 지었다. 개발도상국 아동 후원단체인 플랜(Plan) 및 김점선 기념사업회 등이 힘을 보탰다. 10~15세의 캄보디아 청소년 600여명이 이 학교에서 미술을 배운다. 학생들이 사용할 물감과 붓은 신한물감이 후원했다. 700㎏이나 되는 600명분의 스케치북은 김수경 작가가 댔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