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Story] 평양에 잇단 의문의 죽음…'살생부'도 나돌아
평양 시내에 '대숙청 살생부'가 나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세간의 예상을 뒤엎고 건강을 회복한 이후 곳곳에 '피바람'이 불고 있다는 게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목된 3남 김정은의 측근 그룹이 권력세습을 안착시키기 위해 '곁가지' 제거에 나섰다는 것이다.

26일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최근 2년 동안 김정일의 최측근 10여명이 처형되고 100여명이 고위직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초 김정은 측근 인물들의 비리 제보에 따라 '간첩죄' 명목으로 공개 처형된 유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다. 그는 매일같이 김정일과 독대하고 술을 마시는 등 '형제 같은 측근'이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북한 권력상층부 내에도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는 후문이다. 또 김용식 반탐(反探)국장을 비롯해 평소 유경과 가깝게 지냈던 국가안전보위부 핵심간부 10여명도 함께 숙청됐으며,수십 명이 조직에서 쫓겨나는 등 보위부 전체가 한바탕 몸살을 앓은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고위인사들의 숙청은 지난해부터 가시화됐다. 김정일의 매제이자 김정은의 '후견인'을 맡고 있는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최대 라이벌로 꼽히던 이제강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지난해 6월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로부터 며칠 뒤 장성택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했다. 차량이 적은 평양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였기 때문에 단순 사고가 아닌 숙청 개연성이 거론됐다. 이용철 당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제1부부장도 비슷한 시기에 석연치 않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김정은 시대'의 주축이 될 당 · 정 · 군의 중간 간부층이 최근 들어 30~40대 인물로 대거 교체되고 있다. 새로운 권력의 부상과 체제 단속 과정에서 엘리트 간의 견제가 치열해졌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숙청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탈북자단체인 NK지식인연대 관계자는 "김정은과 그 주변의 젊은 측근들이 주도하는 숙청이 진행되는 등 평양 시내에 살생부가 돌고 있다"며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4월15일)께 관련 지시가 내려졌다"고 말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 내에서 세습체제를 굳히기 위한 사람 잡기가 시작됐다"며 "쫓겨난 간부들은 이를 갈며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데니스 블레어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최근 대북방송인 '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이 의심 많고 편집증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후계작업이 그리 매끄럽게 진행되진 않을 것"이라며 "권력세습 과정에서 모종의 투쟁(struggle)과 걸림돌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