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넘은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급기야 '재벌 손보기'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반값등록금,감세철회를 둘러싼 정 · 재계의 입장차가 경제계 대표의 국회 상임위 출석 논란으로 이어지더니 마침내 대기업을 압박하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은 선거를 앞두고 서민 · 중산층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계속 대기업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대기업은 '이대로 당할 순 없다'고 맞서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재벌개혁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보수'를 자임하는 한나라당에서 나왔다. 당 소장파의 리더 격인 정두언 의원이 총대를 멨다. 그는 '북한의 세습체제를 능가하는 세습지배구조''문어발식 족벌경영''중소기업 쥐어짜기' 등 자극적인 용어를 총동원했다. 그러면서'재벌개혁 없이는 선진화가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대표 선거에 나선 남경필 의원도 2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전경련이 정치권의 포퓰리즘 확대를 우려한 데 대해 "경제단체 측에서 정말 오만한 또 탐욕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정 의원과 남 의원은 '소득 · 법인세 감세철회'와 친서민 정책만이 한나라당의 생존카드라고 주장하며 정태근 김성식 의원 등 다른 수도권 소장파를 리드하고 있다.

대기업 때리기에는 여야가 한목소리다. 선거에서 친서민 표를 얻기에 대기업 때리기만큼 좋은 카드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정치권이 친서민 반기업 선명성 경쟁에라도 나선 모양"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재계를 겨냥해 "혜택은 만끽하면서 고통은 전혀 분담하지 않는다"면서 "최근 경총과 대한상의 전경련 등이 정치권을 폄훼하고 국회를 모욕하는 언사를 일삼고 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도 했다.

다른 의원은 그 속내에 대해 "예전에 비해 서민층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재벌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안 좋아졌다. (재벌 때리기로) 서민 · 중산층까지 포용할 수 있다"고 솔직하게 평가했다. 선거를 10개월여 앞두고 등장한 여야의 대기업 때리기는 앞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재계 쪽은 "대기업 때리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재벌의 비대화 때문에 우리 경제가 선진국 문턱에서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는 정 의원의 지적을 예로 들며 "숱한 위기를 극복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한국 대기업의 성장과 관련해 현격한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9년 미국발 금융 위기 때만 해도 삼성,LG,현대차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경쟁자들이 주춤한 사이 과감한 투자 결정을 통해 세계 주요 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2009년 현대자동차(기아차 포함)의 세계 판매는 475만대로 전년 대비 13.1% 증가했고 그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일본 8개 전자 대기업의 영업이익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이런 성장은 기업들이 내핍 대신 과감한 투자를 통해 일궈낸 결실이며 결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행위가 아니라는 반박이다. 세습 지배구조와 관련한 정 의원의 비판에 대해서도 재계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인 사유 재산권을 부인하는 발언"이라며 반박했다.

박수진/박동휘/허란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