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대접받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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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의 썰렁한 농담에 웃어주는 어느 부하직원의 씁쓸한 TV 커피광고가 있다. 한 번 이상 이런 억지웃음을 지은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사의 썰렁한 농담에 웃지 않는 한 여직원이 있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는 내일 회사를 그만 둔다고 한다. 이처럼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은 상사의 분위기를 맞춰 주어야 편하다. 또한 이해관계로 얽혀있으면 원치 않아도 대접을 해 주어야 영업이 편하다. 다만 대접받는 사람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최근 공무원이 직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외상술값 및 골프용품 값을 업체에 떠넘겼다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아랫사람에게 금품을 강요를 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당연하다거나 관행적인 행위일 뿐이라며 변명을 한다. 만약 입장이 바뀌었어도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을지.
몇 년 전에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고위직 공무원을 그만 둔 A씨가 모 한식당에서 그동안 감사했던 분들을 모시고 식사를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해서 참석하게 됐다. 길이 막힐까 걱정해 서두르는 바람에 한 시간이나 일찍 그 식당에 도착하고 말았다.
식당 주인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식당 주인은 내가 그날 초대받은 손님인줄 모르고 안면이 있는 네게 이런 저런 넋두리를 했다. 그 중에 음식과 술을 준비해 오는 사람, 직위를 이용해 음식 값을 남에게 전가하는 사람이 가장 싫은 손님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런데 자리를 마련한 A씨가 그 날 음식재료를 모두 가져온 게 아닌가. 와인까지도 말이다. 한 마디로 식당주인은 원가는 고사하고 밑지는 장사였다. 게다가 제일 좋은 방을 차지하고 있으니, 주인 심사가 편할 리 없었다. 자리를 함께 한 내 마음 또한 바늘방석 위에 있었다.
그런데 사건은 더욱 커지고 말았다. 눈치 없는 A씨는 자꾸 주인을 불러 음식을 더 내오라고 채근했다. 참다못한 나는 "고급 음식을 먹는다고 제일 비싼 방을 예약하시고는 정작 음식 재료와 술은 모두 공짜로 다른 데서 가져오시면 음식점 사장은 뭐가 남습니까?" 그러자 A씨는 나에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 사장과 나는 15년 인연입니다. 우린 친한 사이라구요!" 그 말에 나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친분을 내세워 상대방을 희생시키면서도 그는 너무 당당했다.
속내와 달리 겉으론 웃는 얼굴로 마음에도 없는 친절한 말을 하는 식당주인의 표정을 보자, 미루었던 화가 일순간 터지고 말았다. 덩달아 A씨의 의견에 동조했던 일행들에게도 그동안 참았던 속내를 거침없이 터뜨리고 말았다. 분위기는 얼어붙고 침묵만 흘렀다. 일행은 그런 작은 일로 그토록 화를 낼 필요가 있냐며 여전히 내가 화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갑’의 지위에 있던 사람은 퇴직 후에도 여전히 자신이‘갑’인줄 착각한다. 그리고 ‘갑’일 때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지인이며 불편한 요구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자신이‘을’의 입장이 되면 상대방에게 온갖 세상 욕은 다하며 화를 낸다.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 자기는 예전에 그러지 않았는데 하면서.
대접받기 원하고 불편을 주는 사람을 지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일방적이고 친분을 강요당하는 그런 우정을 원하는 사람도 없다. 상대의 입장을 살펴주는 마음이 지인의 마음이고, 계급장를 떼고 만나도 언제나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지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hooam.com/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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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무원이 직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외상술값 및 골프용품 값을 업체에 떠넘겼다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아랫사람에게 금품을 강요를 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당연하다거나 관행적인 행위일 뿐이라며 변명을 한다. 만약 입장이 바뀌었어도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을지.
몇 년 전에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고위직 공무원을 그만 둔 A씨가 모 한식당에서 그동안 감사했던 분들을 모시고 식사를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해서 참석하게 됐다. 길이 막힐까 걱정해 서두르는 바람에 한 시간이나 일찍 그 식당에 도착하고 말았다.
식당 주인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식당 주인은 내가 그날 초대받은 손님인줄 모르고 안면이 있는 네게 이런 저런 넋두리를 했다. 그 중에 음식과 술을 준비해 오는 사람, 직위를 이용해 음식 값을 남에게 전가하는 사람이 가장 싫은 손님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런데 자리를 마련한 A씨가 그 날 음식재료를 모두 가져온 게 아닌가. 와인까지도 말이다. 한 마디로 식당주인은 원가는 고사하고 밑지는 장사였다. 게다가 제일 좋은 방을 차지하고 있으니, 주인 심사가 편할 리 없었다. 자리를 함께 한 내 마음 또한 바늘방석 위에 있었다.
그런데 사건은 더욱 커지고 말았다. 눈치 없는 A씨는 자꾸 주인을 불러 음식을 더 내오라고 채근했다. 참다못한 나는 "고급 음식을 먹는다고 제일 비싼 방을 예약하시고는 정작 음식 재료와 술은 모두 공짜로 다른 데서 가져오시면 음식점 사장은 뭐가 남습니까?" 그러자 A씨는 나에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 사장과 나는 15년 인연입니다. 우린 친한 사이라구요!" 그 말에 나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친분을 내세워 상대방을 희생시키면서도 그는 너무 당당했다.
속내와 달리 겉으론 웃는 얼굴로 마음에도 없는 친절한 말을 하는 식당주인의 표정을 보자, 미루었던 화가 일순간 터지고 말았다. 덩달아 A씨의 의견에 동조했던 일행들에게도 그동안 참았던 속내를 거침없이 터뜨리고 말았다. 분위기는 얼어붙고 침묵만 흘렀다. 일행은 그런 작은 일로 그토록 화를 낼 필요가 있냐며 여전히 내가 화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갑’의 지위에 있던 사람은 퇴직 후에도 여전히 자신이‘갑’인줄 착각한다. 그리고 ‘갑’일 때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지인이며 불편한 요구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자신이‘을’의 입장이 되면 상대방에게 온갖 세상 욕은 다하며 화를 낸다.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 자기는 예전에 그러지 않았는데 하면서.
대접받기 원하고 불편을 주는 사람을 지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일방적이고 친분을 강요당하는 그런 우정을 원하는 사람도 없다. 상대의 입장을 살펴주는 마음이 지인의 마음이고, 계급장를 떼고 만나도 언제나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지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hooam.com/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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