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에 열리는 샌프란시스코 국제 와인대회는 30년이라는 역사만큼이나 권위 있는 술 박람회다. 지난해 대회는 30주년을 맞아 전 세계 내로라하는 3900여종의 술들이 선보인 사상 최대 규모 행사였다. 대회 기간에 샌프란시스코는 그 술들이 풍기는 주향으로 가득했었다. 필자의 회사는 우리술 5종을 처음 출품해 세계의 명주들과 함께 자웅을 겨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막걸리가 세미 스파클링 와인 분야에서 당당히 3위를 차지,세계무대에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함께 출품한 약주도 쌀을 원료로 만든 와인 분야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우리 술의 우수성과 가능성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3년째 막걸리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 중국 등 아시아인들 사이에서도 한류열풍과 더불어 인기를 얻는 추세다. 최근에 출시되는 막걸리는 제조 방법과 원재료의 다양화를 통해 텁텁한 맛과 특유의 냄새,저렴한 서민의 술이라는 이미지를 상당 부분 털어버렸다.

하지만 와인이나 사케처럼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술로 자리매김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인식의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스스로 막걸리를 논두렁의 농주나 공사판의 허기를 달래는 술로 가두어 둔다면 막걸리의 세계화는 요원하다. 비빔밥이 뉴욕의 빌딩숲 사이에서 웰빙음식으로 당당히 성공했듯,막걸리에 담긴 선조들의 철학과 이야기를 맛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필요한 이유다.

올해 정부는 전통주 품질인증제를 도입했다. 첫 단계로 막걸리 6개 브랜드의 품질을 인증한 바 있다. 영세성과 노후한 시설에서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전통주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한 현실을 감안할 때 지극히 환영할 일이다.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주가 세계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의 노력과 협력이 절실하다. 지역의 소규모 업체들은 그들만이 만들어 공급할 수 있는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한 고부가가치 막걸리를 만들어야 한다. 대형업체는 과학적 연구와 개발을 바탕으로 대중적인 막걸리를 만들어 합리적인 가격에 유통시켜 대량 소비와 함께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상호보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흔히들 21세기는 문화전쟁의 시대라고 한다. 문화 중에서도 식문화는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무한한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샴페인 명칭에 대한 독점화,이탈리아와 미국 간 피자전쟁,헝가리 정부의 와인산지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태국 정부의 타이음식 글로벌화 전략은 식문화가 총성 없는 문화 전쟁터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술은 '만든다'라는 말 대신 '빚는다'는 표현을 쓴다. '빚다'는 말에는 '정성을 들여 만든다'는 의미가 내재해 있다. 철학과 정성으로 빚은 우리술이 21세기 문화의 전쟁터에서 당당히 승리해 사케와 와인을 넘어서는 그날을 꿈꿔 본다.

배중호 < 국순당 사장 jungho@ksd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