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 정부청사의 A부처 사무실.근무시간이 끝난 뒤에도 직원들이 남아 '모의고사' 준비에 한창이다. 이달 말까지 국무총리실에 제출해야 하는 '상반기 주요 사업성과' 보고서를 다듬는 작업을 A부처 공무원들은 이렇게 부른다. 부처 핵심사업 4~5개와 서민생활 · 정책관리역량 · 정책홍보 · 국민만족도 등을 자체평가하는 일이다.

과천청사의 B부처는 요즘 장 · 차관이 주요 국장들을 틈나는 대로 불러 일자리 창출 · 녹색성장 등 정책추진 성과를 '포장'하는 작업을 독려한다.

정부 부처들이 요즘 사업성과보고서 작성에 비상이 걸렸다. 상 · 하반기로 나눠 매년 두 차례 총리실에 제출하는 보고서는 해당 부처 공무원들의 인사평가는 물론 성과급 지급의 주요 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대상은 중앙부처와 '청'급 기관 39곳.상위 20%는 '우수' 판정을 받지만 하위 20%는 '미흡'으로 사실상 낙제점수를 받는다. 민간 전문가 200여명이 보고서를 채점,'성적표'를 통보한다.

총리실의 평가는 부서 자체평가와 합산돼 부처별 성과급 산정에 최대 40%까지 반영된다. 최고 · 최저 등급 간 차이는 연봉기준 5급 공무원이 500만원,3급은 700만원,1급은 1000만원까지 벌어진다.

행정안전부의 한 직원은 "답안지(보고서) 제출기한이 다가오면서 관련 부서별로 평가지표 형식에 맞춰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부처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또 다른 부처 관계자는 "부처별로 순위까지 공개적으로 발표되는 만큼 장 · 차관을 비롯한 고위급 간부들이 신경을 많이 쓴다"고 했다.

총리실은 '성적표' 작성이 신경쓰일 수밖에 없다. '점수'가 확정되고 나면 나쁜 성적을 받은 부처의 간부들이 총리실로 찾아와 "이건 더 좋게 봐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기 일쑤다. 그래서 작년부터는 아예 부처별로 공식적인 '해명 시간'을 준다. 총리실,부처담당자,전문가들이 참여해 평가결과에 대해 격론을 벌인다. "때론 고성이 오가는 등 분위기가 심각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채점자'인 총리실 정책분석평가실 관계자는 "'좀 봐달라'는 부탁을 하는 경우가 많아 다른 부처 직원과는 잘 만나지 않는다"며 "점수를 낮게 받은 부처는 '점수를 이렇게 낮게 줄 수 있느냐'며 눈총을 보내기도 한다"고 '운신'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때문에 부처의 '로비'를 막기 위해 2년에 한 번씩 교체하는 전문가 평가단 선발은 극비 사항이다.

심오택 정책분석평가실장은 "우리 평가 결과가 장 · 차관 인사에까지 적잖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남윤선/강경민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