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경주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 중앙은행총재 회의.윤증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의 최대 목표 중 하나는 국제통화기금(IMF) 내 신흥국 지분 확대였다. 관건은 유럽의 양보를 얻어내는 일.윤 장관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55 · 사진)을 설득하면 유럽의 동의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그를 찾아갔다. 잠시 윤 장관의 얼굴을 쳐다보던 라가르드 장관은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성공하면 우리가 같이 성공하는 것이고, 실패하면 내가 실패하는 겁니다. "

'세계적인 여장부' 라가르드 장관이 차기 IMF 총재로 사실상 확정됐다. 미국 유럽에 중국의 지지까지 이끌어내면서다. 2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이 라가르드 장관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한국 정부도 이날 라가르드 지지 의사를 IMF 측에 전달했다. 공식 선출은 30일로 예정돼 있지만 라가르드 장관은 이미 IMF 이사회 투표권의 40% 이상을 확보했다.

라가르드 장관은 파리의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교육을 프랑스에서 받은 정통 엘리트다. 하지만 프랑스 정치인이나 관료 중 영어를 가장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국제 경험이 많다. 미국 메릴랜드에서 대학 예비학교를 다녔고 미국 의회에서 윌리엄 코언 전 상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가 20년 넘게 변호사로 활동하며 대표까지 지낸 베이커앤드맥킨지도 미국계 로펌이다. 24개 이사국의 의견을 조율하고 전 세계 경제를 챙겨야 하는 IMF 총재직에 적임자로 꼽히는 이유다.

라가르드 장관은 2005년 농수산장관으로 공직에 발을 들인 후 통상장관을 거쳐 2007년 재무장관에 선임됐다. 주요 8개국(G8)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009년 라가르드 장관을 유로존 최고의 재무장관으로 선정했다. 같은 해 미국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7위에 뽑히기도 했다. 윤증현 전 장관은 그를 "능력과 품성, 모든 측면에서 뛰어난 슈퍼우먼"이라고 평가했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국가대표 출신인 그는 요가와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스포츠광이다. 이번 IMF 총재 선출 과정에서 발휘한 특유의 승부사 기질도 이 같은 배경에서 비롯됐다. 경쟁자인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멕시코 중앙은행 총재가 "더 이상 IMF를 유럽인이 독식하게 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라가르드 장관은 '신흥국을 위한 IMF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중국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