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표 뽑고 8분 안에 서비스하니 고객들이 팔 걷고 손님 모셔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제임스 갤로웨이 SC그룹 소매금융 부문 대표
은행 거래 불만 1순위는 '지루한 기다림'
은행 거래 불만 1순위는 '지루한 기다림'
2003년 세계적 장난감 업체 레고가 파산위기에 몰렸다. 게임기의 등장으로 장난감 시장에서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한 해 적자는 2300억원,총부채는 8200억원에 달했다. 레고는 위기타개책을 찾아 나섰다. 결론은 핵심 고객과 본업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레고의 핵심고객은 5~9세 초등학생,본업은 조립식 장난감 제조였다. 여기서 벗어나는 비디오게임,테마파크,여성용 장난감 등은 대부분 팔아 치웠다. 그리고 다시 찾은 고객 덕분에 위기를 극복했다.
2008년부터 몰아닥친 금융위기로 글로벌 투자은행 대부분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영국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은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비결은 레고의 부활과 비슷했다. 은행의 본업인 개인고객을 대상으로 한 소매금융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파생상품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를 최소화한 결과다. 또 핵심고객에 집중하는 것을 잊지 않음으로써 위기를 피해갔다. SC는 인도와 중국을 중심으로 활동한 스탠다드은행과,아프리카를 무대로 영업해온 차타드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그래서 영국계 은행이지만 1969년 설립 이후 줄곧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에서 주로 영업을 하고 있다. 핵심시장과 고객이 창립 당시에 비해 크게 바뀌지 않은 것이다.
국내 은행들이 요즘 중국 인도 동남아 등 신흥시장 진출을 활발히 추진 중이다. 최근 방한한 제임스 갤로웨이 SC그룹 소매금융 프리퍼드퍼스널뱅킹(prefered personal banking)부문 대표(47)로부터 신흥시장 금융소비자 공략 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갤로웨이 대표는 20년간 금융업계뿐 아니라 영국 정유업체인 BP,호주 최대 소매유통그룹인 콜스마이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마케팅 전문가다.
▼은행이 소매금융 사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점은 뭡니까.
"은행뿐 아니라 모든 기업은 하고 싶은 사업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사업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욕구를 파악해 혁신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줘야 합니다. 우리는 고객들이 은행에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연구했습니다. 결론은 금융처리 시간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용카드,개인대출,주택담보대출 관련 업무 소요시간을 30%까지 줄였습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중국 등에서는 고객 서비스 8분 보증제를 시행 중입니다. 이 제도는 지점을 방문한 고객이 번호표를 뽑은 뒤부터 직원 서비스를 받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8분 이내로 줄이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SC 고객이 다른 고객에게 우리 은행을 추천한 지수가 작년에는 전년 대비 56% 올랐습니다. 고객의 욕구는 불만으로 나타납니다. 그 불만을 줄이고 고객 불만을 처음 접수했을 때 한번에 해결하는 데 주력한 덕분입니다. "
▼업무 해결 시간을 줄이는방법은 뭡니까.
"업무혁신을 할 때 많은 기업이 개별 프로세스 개선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전체적인 문제점을 조망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체 프로세스를 보고 기술적으로 풀 수 있는 부분,정책으로 풀 수 있는 것,내규로 해결할 수 있는 것 등을 나눠 개선을 진행해야 합니다. 대출 속도 개선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선 고객이 대출 신청 시부터 돈 받을 때까지 전 과정을 살펴보는 게 필요합니다.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 중에는 아직도 수작업으로 대출 업무를 하는 곳이 있습니다. 이를 자동화 · 전산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는 정책적 해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직원들의 생산성 향상도 필요합니다. 기존에는 A업무가 끝나야 B업무를 시작했던 걸 동시에 진행하도록 교육시키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이는 기술과 교육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일부 금융회사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는데요.
"3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치자 경쟁사 상당수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쳐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위기일수록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에 집중해야 합니다. SC그룹은 금융위기 충격이 덜한 신흥시장에서 기회를 찾았습니다. 신흥시장은 SC가 가장 잘 아는 시장이며,애초의 출발점이었죠.금융위기 이후 홍콩 인도 중국에 중소기업 사업부를 출범시켰습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인도 중국 등 5개 시장에서는 서민들을 위한 서비스를 새로 시작했습니다. 핵심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신흥시장 전략도 국가별로 달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위기 이후 전체적인 투자자들의 태도는 자산 증식과 안전성 선호 양쪽 측면에서 상당히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부적인 추세는 국가마다 다릅니다. 신흥시장 중에서도 인도네시아 인도 말레이시아 중국의 경우는 아시아지역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부자들이 자신의 재산이 늘어날 것으로 낙관하는 비중이 더 높았습니다. 이들 지역에 거주하는 부유층 중 80% 이상이 자신들의 부(富)가 향후 12개월간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또 아시아 지역의 응답자 중 50%가 적당한 리스크를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답했고,한국 홍콩 인도네시아 인도 등이 가장 높은 리스크 선호도를 보였습니다. 이런 개별적 특성에 맞는 상품을 만들어 시장을 공략해야 합니다. "
▼한국 소매금융 고객들의 독특한 특성이 있다면.
"한국은 아시아에서 평균소득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구체적 재산형성 목표를 갖고 있는 부유층은 별로 없습니다. 최근 SC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국 응답자 중 15%만이 구체적인 자산증식 목표가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아시아 지역 평균 65%를 크게 밑돕니다. 그러나 특징적인 것은 구체적인 자산증식 목표를 세웠다는 고객들이 제시한 목표액은 500만달러에 달했습니다. 다른 어느 아시아 국가보다 높은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자동차를 구입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부유층 중 81%가 자신의 지위를 부각시킬 수 있는 자동차를 선호한다고 답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끄는 데 상당히 적극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SC그룹은 앞으로 어떤 시장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입니까.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4000여명을 신규 채용했는데 이 중 대부분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중국 말레이시아에 집중됐습니다. 이들 지역은 가장 높은 성장세를 기록 중인 국가들로 올해도 투자를 집중할 계획입니다. 올해는 엄격한 비용관리에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룹 전반에 걸쳐 수익 창출과 비용 증대가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될 수 있도록 각 사업부를 경영해 나갈 것입니다. "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