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권업계의 큰 별' 김창희 전 대우증권 사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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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권업계의 큰 별이 졌다.
대우증권을 업계 1위로 만든 김창희(金昌熙) 전 대우증권 사장이 지난 28일 밤 8시경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1937년 서울에서 출생한 고인은 경기고와 1961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한증권을 시작으로 한국증권거래소, 한국투자개발공사, 한국증권금융을 거쳐 1973년 대우증권의 전신인 동양증권에 입사했다. 1984년부터 1999년까지 16년간 대우증권 사장을 역임하면서 과감한 일처리와 추진력으로 고속 성장을 이끌며 대우증권을 증권업계 부동의 1위로 올려놨다.
재임기간중인 1984년에 증권업계 최초로 동경과 뉴욕에 해외사무소를 설립해 국내 영업을 벗어나 해외 개척의 토대를 만들었으며 국내 최초의 외국인 전용펀드인 코리아펀드를 설립해 한국의 대표기업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소개함으로써 글로벌자본의 국내 주식시장 유입의 물꼬를 트는 시금석을 마련했다.
이 외에도 리서치센터의 전신인 대우경제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증권업계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대우증권을 통해 배출된 많은 인재들이 증권업계뿐 아니라 자산운용사 CEO로 진출해 지금의 ‘증권사관학교’의 명성을 있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대우증권 사장 당시 증권업협회 부회장, 증시안정기금 대표이사장, 코리아펀드 부회장, 상장사협의회 부회장 등의 직을 수행했으며 퇴임 후에는 대우증권 퇴직 임원들의 모임인 '큰산회' 회장을 지냈다.
재무부장관 표창을 비롯 저축의날 은탑산업훈장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2천년대를 향한 성장산업과 기업경영전략’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양현덕씨, 장남 기원(아즈텍시스템 대표)과 차남 기영(대우증권 경영관리부 이사). 빈소는 서울 삼성의료원 17호실이며 발인은 7월1일(금) 오전 8시30분, 장지는 성남 영생원 소망동산이다. 빈소 (02)3410-6917
한경닷컴 정형석 기자
대우증권을 업계 1위로 만든 김창희(金昌熙) 전 대우증권 사장이 지난 28일 밤 8시경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1937년 서울에서 출생한 고인은 경기고와 1961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한증권을 시작으로 한국증권거래소, 한국투자개발공사, 한국증권금융을 거쳐 1973년 대우증권의 전신인 동양증권에 입사했다. 1984년부터 1999년까지 16년간 대우증권 사장을 역임하면서 과감한 일처리와 추진력으로 고속 성장을 이끌며 대우증권을 증권업계 부동의 1위로 올려놨다.
재임기간중인 1984년에 증권업계 최초로 동경과 뉴욕에 해외사무소를 설립해 국내 영업을 벗어나 해외 개척의 토대를 만들었으며 국내 최초의 외국인 전용펀드인 코리아펀드를 설립해 한국의 대표기업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소개함으로써 글로벌자본의 국내 주식시장 유입의 물꼬를 트는 시금석을 마련했다.
이 외에도 리서치센터의 전신인 대우경제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증권업계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대우증권을 통해 배출된 많은 인재들이 증권업계뿐 아니라 자산운용사 CEO로 진출해 지금의 ‘증권사관학교’의 명성을 있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대우증권 사장 당시 증권업협회 부회장, 증시안정기금 대표이사장, 코리아펀드 부회장, 상장사협의회 부회장 등의 직을 수행했으며 퇴임 후에는 대우증권 퇴직 임원들의 모임인 '큰산회' 회장을 지냈다.
재무부장관 표창을 비롯 저축의날 은탑산업훈장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2천년대를 향한 성장산업과 기업경영전략’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양현덕씨, 장남 기원(아즈텍시스템 대표)과 차남 기영(대우증권 경영관리부 이사). 빈소는 서울 삼성의료원 17호실이며 발인은 7월1일(금) 오전 8시30분, 장지는 성남 영생원 소망동산이다. 빈소 (02)3410-6917
한경닷컴 정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