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2시 국회 본청 246호.한나라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당초 안건은 '6월 임시국회의 법안 처리'였지만,정의화 비상대책위원장은 법안 얘기 대신 "당이 전당대회 룰 때문에 비상사태"라며 "의원님들은 7월2일 열리는 전국위원회에 위원들의 참석을 독려해달라"고 당부했다.

'비상사태'라는 말이 맞다. 전당대회를 불과 5일 앞두고 경선룰이 무효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전날 "한나라당이 직접 참석하지도 않은 전국위원들의 입장을 위임장으로 받아 당헌 개정안을 의결하고 반대하는 자에게 의결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은 것은 정당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며 전국위원회의 의결사항 효력을 정지시켰다. 당시 이해봉 전국위 의장은 회의에 불참한 전국위원 266명의 의사를 위임장으로 대체,의사봉을 두드렸었다.

이번 판결은 경남 김해의 전국위원인 김모씨가 당시 전국위원회의 의결이 무효라고 재판부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결과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본지는 이 사건을 지난 14일자로 최초 보도했지만 당시 대부분 의원과 당직자들은 "김씨는 4 · 27 재 · 보궐 선거에 나가기 위해 김해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진 친이계 인물로 당을 흠집내기 위한 성격"이라며 "돌출적인 행동이니만큼 잘 달래서 설득하면 소송을 취하할 것"이라고 폄훼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문제를 계파와 이해관계의 문제로 치부한 것이다. 한 의원은 "이 사건은 최근 한나라당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말로는 '비상시기'라고 하지만,결국 속내는 계파 간,개인 간 이해에 따라 판단하고 말하며 행동한다. 이를 교통정리해줄 당 지도부도 없다"는 것이다.

새 지도부가 구성된 지 두 달여 만에 벌써 열 번째 열린 이날 의총에 참석한 의원은 50여명으로 전체(169명)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의총에 불참한 한 의원은 "현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결의할 사항도 아닌 것 같아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계파 간에 서로 헐뜯느라 정신이 없고,결론을 모을 수도 없다. 당보다 자기를 먼저 생각하니 정책은 갈 '지(之)'자 행보만 거듭한다. 이건 집권 여당도 아니다"는 당직자의 한탄에 한나라당의 현 주소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김재후 정치부 기자 hu@han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