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속보]회사가 유상증자를 하면서 인수자와 “주가가 인수가격보다 떨어지면 인수가격에 되사겠다”는 풋옵션을 약정했더라도 이를 이행할 필요가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4부(부장판사 이강원)는 29일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이 서울선박금융(옛 C&선박금융)을 상대로 “서울선박금융의 신주 10억원 어치를 인수할 때,인수가보다 주가가 떨어지면 서울선박금융이 신주 인수가로 주식을 되사겠다는 내용의 풋옵션을 체결했다”며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다른 주주들에게 인정되지 않는 우월한 권리를 원고에게만 부여하는 것은 주주 평등 원칙의 위반이며,자사 주식을 다시 매입하는 행위는 자기주식취득 금지법에도 위반된다”며 “이는 증권시장의 본질을 훼손하고 안이한 투자판단을 초래해 가격형성의 공정성을 왜곡하는 행위이므로 이 약정은 무효”라고 판단했다.이어 “아무리 서로 ‘풋옵션 약정이 유효하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무효로 판단된 계약은 이행할 필요가 없으므로 계약 불이행시에도 손해배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또 법원은 “풋옵션 약정에 따르면 피고가 자사주 취득을 못하면 제3자가 손해 본 주식을 사주도록 돼있다”는 원고 측의 주장에도 재판부는 “풋옵션 발행에 따른 위험을 정당한 이유 없이 제3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08년 1월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은 서울선박금융이 발행한 신주 2만주를 10억원에 인수했다.이 때 양 측은 메리츠화재가 서울선박금융 혹은 서울선박금융이 지정하는 자에게 인수한 주식을 매도할 수 있는 권리(풋옵션)를 인정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다.서울선박금융은 신주 인수를 요청할 때 “원금회수를 보장하고,서울선박금융의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그룹 계열사인 씨앤상선,씨앤중공업 등이라도 주식인수를 해주겠다”고 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그룹회장이 주가조작·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되는 등 회사가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하자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1월9일자로 풋옵션을 행사했다.하지만 서울선박금융이 주식을 되사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