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모나리자가 유명해진 것은 절도사건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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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배반 / 더컨 와츠 지음 / 정지인 옮김 / 생각연구소 / 399쪽 / 1만5000원
과학·일상생활 속에서 상식 배반하는 일 '부지기수'
과학·일상생활 속에서 상식 배반하는 일 '부지기수'
왼손에는 총알 한 개를,오른손에는 총알이 장전된 총을 들고 있다. 두 손을 똑같이 어깨 높이로 들어올리고 총을 발사하는 동시에 총알을 떨어뜨린다. 어느 총알이 땅바닥에 먼저 닿을까. 왼손의 총알이라고 답했다면 대단히 상식적인 사람이다. 발사된 총알은 속도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더 오래 공중에 떠 있을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틀렸다. 물리법칙에 따르면 두 총알 모두 똑같은 시간에 바닥에 닿는다.
과학의 세계에는 이처럼 상식을 배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과학의 영역뿐만 아니다. 일상생활 속의 상식도 마찬가지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에 커다란 함정이 뚫려 있기 십상이다. 특히 일상을 넘어선 일에까지 상식을 적용해 낭패를 보는 일도 허다하다.
《상식의 배반》은 우리의 머리와 가슴 속에 확고히 자리잡은 상식에 반기를 든 책이다. 저자는 추호도 의심해본 적 없는 우리의 상식이 사실은 얼마나 허술한지 낱낱이 파헤친다. 파장이 큰 사회문제를 더 이상 상식적인 수준에서 검토하고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는 까닭이다.
상식은 누구나 보편타당한 진리라고 믿는 비공식적 규칙쯤으로 정의된다. 일상의 삶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지능'의 정수라고 할까. 각각의 상황에서 무엇이 적절한지 그것도 어떻게 아는지 모른 채 그냥 안다. 상식에 어긋나는 상황이 돼야만 그 존재를 의식하게 되는 그런 것이다.
상식에 대한 신뢰는 대단하다. 일상생활 속의 지금,여기에서 맞닥뜨린 소소한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 사회적 문제까지 상식의 잣대를 들이대 판단하고 실행한다. 저자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상식의 자만심'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공동주택 프로젝트인 시카고의 '로버트 테일러 홈' 프로젝트가 좋은 예다. 이 사업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이뤄진 도심 주민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로 시작됐다. 돈만 충분하면 성공한다는 게 상식이었다. 결과는 황폐한 건물과 가난,갱단의 출현이란 재앙으로 끝났다.
금전적 인센티브가 업무성과를 끌어올릴 것이란 믿음은 어떨까. 상식대로라면 인센티브가 늘어나면 업무에 대한 동기가 강화될 게 틀림없다. 사실은 자신의 권한이 늘었다는 의식으로 인해 그런 동기 부여가 상당히 약화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은 사소한 변수에도 많은 영향을 받아 왜곡되기 일쑤다. 한 실험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시민의 장기기증 의사를 물었는데 12%와 99.9%가 나왔다. 어찌된 것일까. 비율이 낮았던 독일의 경우 동의를 표하는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야 했다. 결국 서식의 문제였다. 특정한 단어나 소리도 개인의 선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늙은''연약한'이란 단어를 읽은 실험맨은 실험을 마치고 나설 때 더 느리게 걸었다.
와인매장에서 독일 음악을 틀어놓으면 독일 와인이 많이 팔렸다. 건강음료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설문지 작성용 펜의 색깔에 따라 답으로 쓰는 음료도 달라졌다. 와인 경매 전에 자신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두 수를 쓰라고 했더니 숫자가 클수록 더 높은 입찰가를 제시하는 경향도 보였다.
저자가 신뢰할 만한 예측을 내놓을 수 있을 때도 직관과 경험,즉 상식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개인을 넘어 집단행동을 다룰 때 특히 그렇다. 저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의 유명세가 절도사건에서 비롯됐다며 '어떤 것이 성공했다면 그만한 속성이 있다'는 순환논리에 빠지지 말 것을 주문한다. 어떤 사안에 대한 소수의 영향력에 주목하거나 결과로만 판단하는 편향된 선택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페인 의류업체 자라가 현재의 패션흐름을 '측정'하고 즉각 '대응'하듯이,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계획을 세우지 말고 측정할 수 있는 것에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