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기업' 맞나요?"

삼성그룹 고위 임원이 뜬금없이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대한민국 대표기업 아닌가요"란 답변에 그 임원은 "요즘은 정부 부처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정치권이 기업들에 일자리를 더 만들고,양극화 문제도 앞장서서 해결하라는 미션을 부여하고 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기업이 경영활동 이외에 너무 많은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는 볼멘 소리였다. 과연 삼성은 '기업'이 맞을까.

정치권 등에서 대기업을 향해 쏟아내는 요구들을 보면 답은 '아니오'일 것 같다. 예컨대 삼성은 올해 초 신입사원 2만5000명을 채용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작년 연간 기준 전체 신규 취업자(32만3000명)의 8%를 삼성 한 곳에서 뽑는 셈이다. 삼성 관계자는 "2009년 1만6700명,작년 2만2500명을 훨씬 뛰어넘는 대규모 채용을 결정한 것은 일자리 창출이란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취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선 "삼성을 포함한 대기업들이 고용창출에 관심이 없다"는 비판을 연일 쏟아낸다. '대기업들이 돈을 많이 벌고 있으니 더 뽑으라'는 압박이다.

삼성은 신성장동력 발굴에 지지부진하다는 정치권 지적도 들었다. 지난 4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은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삼성전자가 경영진의 안이한 판단으로 애플 아이폰 쇼크에 빠졌다"는 말까지 했다. 삼성 스스로 애플을 꺾을 역량이 안되니 준(準) 정부기관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뿐만 아니다. 삼성은 '내수경기 활성화'란 사명도 부여받았다. 국내 소비를 살리기 위해 20만여명의 임직원에게 1인당 4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나눠주는 등 총 1000억원을 풀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어려운 나라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는 취지"라는 게 삼성 측 설명이지만,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다.

이쯤이면 삼성은 정부 부처나 다름 없다는 말을 들을 법하다. 고용창출,양극화 해소,내수진작 등 '정책과제'를 수행하니 말이다. 다른 대기업의 사정도 비슷하다. A그룹 관계자는 "우리가 고용노동부인지,지식경제부나 기획재정부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2011년 여름,한국 사회에서 기업은 어떤 존재일까. 삼성을 포함한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이태명 산업부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