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경찰 지휘 범위를 법무부령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규정하는 수사권 조정안이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절충안에 반발해 전날 항명성 사퇴로 집단행동에 나섰던 검찰도 여론에 밀려 더 이상 집단행동은 자제하기로 했다. 김준규 검찰총장도 이날 사퇴 의사를 거듭 밝혔다.

◆"더 나서면 손해" 검찰,황급히 물러서

국회는 30일 본회의를 열어 검찰이 경찰의 모든 수사를 지휘하되 자세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는 수사권 조정 절충안을 175명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검찰은 "더 이상 다퉈봤자 실익이 없다"는 자체 판단을 내리고 격앙된 내부 분위기를 추스르는 데 집중했다. 이날 대검찰청은 박용석 차장 주재로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집단행동은 자제하고 업무에 충실하자"는 중지를 모아 일선 검찰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도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검찰총장회의에 참석,김준규 검찰총장에게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며 자제를 촉구했다. 이 대통령은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검찰 동향을 보고받고 "검찰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처럼 비쳐져서는 안 되며,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전날 사의를 표한 김홍일 대검 중앙수사부장 등 검사장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이날 오전 만나 "조직의 불안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사의를 표명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대검 측은 "실제로 사표를 제출한 사람은 홍만표 검사장 한 사람뿐이고,홍 검사장에게 제출된 실무진의 사표는 윗선에 전달되지 않았으며 검사장들은 사표가 아닌 사의를 밝힌 것"이라고 뒤늦게 해명했다.

◆물러선 검찰,무엇을 잃었나

하지만 지난 29일 전국 지검 · 지청 30여곳에서 평검사 회의가 열렸고 서울중앙지검에서도 부장검사들이 긴급 심야회동을 하는 등 격앙됐던 일선 분위기는 잦아들지 않았다. 30일 공주지청 소속 평검사 2명도 검찰 내부전산망에 "죽기를 각오할 용기 없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글을 올리고 사의를 밝혔다.

김 총장의 처신도 도마에 올랐다. 김 총장은 이날 "합의가 깨지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오는 4일 사실상 사퇴 의사를 거듭 밝혔으나 일선의 반응은 "지금 와서 총장 사퇴가 무슨 소용인가"라는 분위기다. 한 검사는 "중앙수사부 폐지에 집중하다 더 큰 현안인 수사권 조정을 놓쳤다는 불만이 팽배하다"며 "실무진과 대검 검사장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는데도 막상 김 총장은 국회 본회의 전 뚜렷한 '액션'을 취한 게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검찰이 '대통령령은 경찰과의 권한 나누기의 물꼬를 틀 것'이라는 절박감에 '집단 반란'을 시도했지만 검찰을 향한 냉정한 여론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도 "국민이 뽑은 입법기관을 무시한 행태" "반성하지 않는 검찰의 오만한 행동" 등 비판이 이어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국회가 결정할 일을 갖고 검찰이 합의 파기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국회의 권능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장이 커지자 법무부는 "국민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송구스럽다"고 뒤늦게 공식 입장을 냈다.

이고운/홍영식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