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ㆍ식품업계 "시스템 안정 1년 걸렸는데 또 바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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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면·과자 오픈 프라이스 철회
가격 되레 올라…전문가 "대표적인 정책 실패사례"
동네슈퍼 "비싼 POS 샀는데"…반값마케팅 부활할 듯
가격 되레 올라…전문가 "대표적인 정책 실패사례"
동네슈퍼 "비싼 POS 샀는데"…반값마케팅 부활할 듯
정부가 과자 라면 등 간식류 제품에 대한 '오픈 프라이스(유통점이 최종 가격 결정)' 제도를 시행한 지 1년 만에 전격 취소키로 한 것은 '가격 안정'이라는 취지가 시장에 먹혀들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책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1년 전 오픈 프라이스 시행과 함께 홍역을 치렀던 유통 · 식품업계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타깃이 돼온 식품 제조업체들은 '권장 소비자가격'을 어느 수준에서 정해야 하는지 걱정하고 있다. 유통업계는 중소 슈퍼마켓을 중심으로 '빙과류 반값 할인' 등의 미끼 상품 판촉도 다시 성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대 방향으로 간 '오픈 프라이스'
정부는 작년 7월 과자 빙과 아이스크림 라면 등에 대해 오픈 프라이스를 적용하면서 간식류 제품의 가격 안정을 기대했다. 소비자가격을 판매점이 정하도록 해 유통업체 간 경쟁을 통한 제품 가격 인하를 유도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판매점 간 가격 경쟁은커녕 대부분 제품의 가격이 급등했다. 30일 한국소비자원이 운영하는 T프라이스에 따르면 새우깡 90g의 대형마트 평균 가격은 작년 7월 567원에서 이달 656원으로 15.7% 올랐다. 칩포테토오리지널 60g도 대형마트에선 1050원으로 1년 새 25.3%,편의점에선 1400원으로 16.7% 뛰었다. 작년 이맘때 대형마트에서 1000원 미만이던 부라보콘 가격도 1150원으로 올라갔다.
한국은행과 통계청 자료에서도 작년 7월부터 올 5월까지 빙과류 가격은 18.0% 상승했으며 비스킷 13.7%,아이스크림 10.8%,스낵 과자는 7.8%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3.88%)을 크게 웃돌았다. 국제 곡물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제조업체가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출고가격이 올라가긴 했지만,상당수 품목은 최종 판매가 인상률이 제조업체 출고가 인상률보다 높았다. 결국 유통업체 간 경쟁 부진이 보다 직접적인 가격상승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혼란에 빠진 식품 · 유통업계
"정말 코미디네요. 유통 · 식품업계 전체가 몸살을 앓으면서 도입한 제도를 1년 만에 다시 옛날로 되돌린다는 게 말이 되나요. " "맹목적인 벤치마킹이 빚은 대표적 정책 실패 사례가 될 겁니다. "
간식류에 대한 정부의 오픈 프라이스 취소 결정을 전해들은 식품 및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황당해하고 있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제품에 권장 소비자가격을 표시할 수 없어지면서 대리점 및 슈퍼마켓 점주들과 적잖은 갈등을 빚은 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는데 1년도 안 돼 제도를 또다시 바꾸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반문했다.
서울 사당동에서 소형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박모씨(55)는 "권장 소비자가격이 없어지는 바람에 제품가격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어 적잖은 돈을 들여 판매시점관리(POS) 시스템을 구비했는데 비용만 더 들게 됐다"고 푸념했다.
◆유통점 '반값 마케팅' 부활할 듯
유통업계에선 동네 슈퍼를 중심으로 '반값 마케팅'이 되살아날 것으로 전망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오픈 프라이스 도입 이전까지 상당수 중소 유통점들이 빙과류를 권장 소비자가격의 절반 가격에 판매하면서 이를 '미끼 상품'으로 활용해왔던 점을 감안할 때 이번에도 같은 유형의 할인 마케팅이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할인하기 전의 정상가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식품업체들은 정부의 가격통제가 더 심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최종 판매가격을 제조업체가 매기는 만큼 식품업체가 간식류 물가안정 정책의 직접적인 타깃이 될 것이란 점에서다.
일부 대형마트들은 정부의 이번 결정에 실망하는 분위기다. 대다수 선진국들이 오픈 프라이스를 통해 제조업체가 가졌던 가격결정권을 유통업체에 넘겨주는 걸 감안하면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이란 지적이다.
김철수/오상헌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