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6년 11월 서른 살의 야심만만한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1646~1716)는 모험을 감행한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당시 마흔네 살의 '불온한 은둔자' 스피노자(1632~1677)와 마주한 것. 라이프니츠는 어떤 의도로 스피노자를 만났을까.

스피노자는 유대 공동체와 기독교단으로부터 다 추방당했기 때문에 스피노자를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생이 끝장날 수 있는 모험이었다.

어떤 신학자는 스피노자를 지목해 "이 시대에 가장 불경스럽고 가장 위험한 자"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라이프니츠 또한 스피노자의 연구가 '오싹하고 끔찍하다''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뻔뻔하다'는 말로 비난하던 차였다.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는 이 두 철학자의 은밀한 만남에 주목한 책이다.

저자는 두 철학자의 짧은 만남을 중심으로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의 삶과 사상을 풀어낸다.

근대 철학자 중에서 현대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받는 스피노자가 '공공의 적'으로 손가락질 받게 되는 과정과 만물에 대한 강박적인 관심 속에 조롱과 찬사를 동시에 받는 라이프니츠의 이야기를 교차하면서 이야기를 엮어간다. 두 철학자의 어려운 사상이 비교적 쉽게 읽힌다.

두 철학자의 1676년 만남을 증명하는 증거는 단 한 장의 종이뿐이라고 한다. '가장 완벽한 존재가 존재한다'는 제목으로 라이프니츠가 쓴 이 문건은 신의 존재를 놓고 두 철학자가 나눴을 대화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 스피노자와의 만남을 부인하던 라이프니츠는 60세가 다 돼서 "내 입장은 한때 너무 멀리까지 나아갔고,스피노자주의자들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저자는 "두 사람은 사실상 극단적으로 상이하면서도 늘 인간 경험의 일부를 형성해 왔던 한 쌍의 철학적인 인물 유형을 표방한다"고 말한다.

그는 "만일 스피노자가 근대 최초의 '사상가'라고 한다면,라이프니츠는 그 시대 최초의 '인간'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