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포퓰리즘의 시대에 다시 레이건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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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완화 시장원리로 세계경제 구원…인플레 찌든 케인스주의 부작용 극복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1911~2004)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추모 열기가 뜨겁다. 그의 동상이 부다페스트에 이어 런던에도 들어선다는 뉴스다. 프라하와 베를린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겼다. 미국인들은 루스벨트,케네디에 이어 세 번째로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는다. 70세에야 대통령에 당선된 레이건은 변변치 못한 대학(일리노이주 유레카대학)을 나온 할리우드 배우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인들에게 정치를 초월한 정신,즉 낙관주의를 회복시켰다는 찬사(오바마 대통령)를 받았다. 말년에 알츠하이머병(치매)을 앓다 간 전직 대통령이 사후 10년도 안 돼 이렇게 추모를 받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레이건의 업적은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말처럼 총 한번 쏘지 않고 냉전을 종식시킨 것이요,침몰해가던 세계경제를 되살려 놓은 것이다. 그는 임기 중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잡았고(1980년 10.4%→1988년 4.2%),연평균 3.8%의 미국 경제성장률을 이뤘다. 16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실업률을 7.4%에서 5.4%로 낮췄다. 그 힘은 감세정책과 규제완화에서 나왔다. 최고 70%이던 소득세율을 28%로 낮췄고,법인세율은 48%에서 34%로 내려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레이건이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정부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정부 자체가 문제"라고 일갈한 것은 그의 경제관을 웅변한다.
우리가 지금 레이건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국내에선 모든 문제의 근원인 양 폄하되는 신자유주의의 본래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함이다. 존 로크,존 스튜어트 밀,임마누엘 칸트,애덤 스미스 등에 의해 만개한 자유주의의 가치를 20세기에 되살린 것이 신자유주의다. 오도된 민주주의 구호 아래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던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로 대변되는 전체주의 · 집단주의에 대한 깊은 반성의 결과였다. 레이건이 집권하기 직전인 1970년대는 재정지출 확대 등 정부 개입을 전제로 한 케인스주의가 오일쇼크로 한계에 봉착해 저성장 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치닫던 상황이었다. 그 해법으로 국가 개입주의를 버리고 개인의 자유와 이에 기반한 시장경제의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 레이건과 대처는 신자유주의 철학을 현실에서 구현해 냈다.
1970년대 말 중국 덩샤오핑은 신자유주의 사상가 하이에크를 초청해 인민을 굶기지 않을 방법을 질문했다. 정부가 식량계획을 포기하고 농민에게 맡기라는 것이 하이에크의 응답이었고,중국은 3년 만에 기근을 해소했다. 신자유주의 가치인 작은 정부와 큰 시장,낮은 세금과 규제완화 등은 여전히 유효하다. 작금의 국내 현실은 집단주의의 재등장이요,퍼주기 정책의 경연장이다. 좌파 포퓰리즘이 국내에서도 판치는 시대다. 새삼 레이건을 생각하게 된다.
레이건의 업적은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말처럼 총 한번 쏘지 않고 냉전을 종식시킨 것이요,침몰해가던 세계경제를 되살려 놓은 것이다. 그는 임기 중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잡았고(1980년 10.4%→1988년 4.2%),연평균 3.8%의 미국 경제성장률을 이뤘다. 16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실업률을 7.4%에서 5.4%로 낮췄다. 그 힘은 감세정책과 규제완화에서 나왔다. 최고 70%이던 소득세율을 28%로 낮췄고,법인세율은 48%에서 34%로 내려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레이건이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정부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정부 자체가 문제"라고 일갈한 것은 그의 경제관을 웅변한다.
우리가 지금 레이건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국내에선 모든 문제의 근원인 양 폄하되는 신자유주의의 본래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함이다. 존 로크,존 스튜어트 밀,임마누엘 칸트,애덤 스미스 등에 의해 만개한 자유주의의 가치를 20세기에 되살린 것이 신자유주의다. 오도된 민주주의 구호 아래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던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로 대변되는 전체주의 · 집단주의에 대한 깊은 반성의 결과였다. 레이건이 집권하기 직전인 1970년대는 재정지출 확대 등 정부 개입을 전제로 한 케인스주의가 오일쇼크로 한계에 봉착해 저성장 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치닫던 상황이었다. 그 해법으로 국가 개입주의를 버리고 개인의 자유와 이에 기반한 시장경제의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 레이건과 대처는 신자유주의 철학을 현실에서 구현해 냈다.
1970년대 말 중국 덩샤오핑은 신자유주의 사상가 하이에크를 초청해 인민을 굶기지 않을 방법을 질문했다. 정부가 식량계획을 포기하고 농민에게 맡기라는 것이 하이에크의 응답이었고,중국은 3년 만에 기근을 해소했다. 신자유주의 가치인 작은 정부와 큰 시장,낮은 세금과 규제완화 등은 여전히 유효하다. 작금의 국내 현실은 집단주의의 재등장이요,퍼주기 정책의 경연장이다. 좌파 포퓰리즘이 국내에서도 판치는 시대다. 새삼 레이건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