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국 일본 독일 등 전 세계 7개국에서 '특허 소송'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와 미국 애플사가 1일 국내 법정에서 처음으로 맞붙었다. 정식 재판 절차를 위해 모이는 공판 준비 기일이어서 짧게 인사만 나눌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양측 변호사들 간에 고성이 오가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날 변론의 원고는 삼성전자,피고는 애플이었다.

양사는 모두 국내 최고 로펌의 특허 전문가들을 선임했다. 삼성전자가 소송을 의뢰한 권영모 변호사(58)는 특허 재판에서 최고 실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난 법무법인 광장 소속이다. 반면 애플은 국내 1위 로펌 김앤장의 지식재산권 전문가 양영준 변호사(57)를 선임했다. 수십년간 국내 특허 소송을 주도한 두 변호사는 40분간 격렬한 공방을 벌였다.

◆삼성, 초반부터 맹공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1부(부장판사 강영수)의 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에서 삼성전자 측은 "애플이 삼성의 통신기술(UMTS，HSUPA) 표준특허 4건을 포함해 특허 5건을 침해했다"며 "아이폰4를 비롯한 애플 제품 케이스에는 삼성이 보유하고 있는 표준특허를 사용하고 있다고 명기돼 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삼성전자를 대리한 권 변호사는 표준특허 기술을 도식화한 그림을 보여주며 "삼성의 특허는 국제 표준과 100% 일치한다"며 "애플이 이를 허락도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애플을 대리해 나온 김앤장측은 "이동통신 국제 표준에는 여러 가지 기술이 포함돼 있다"며 "삼성전자가 문제 삼은 기술을 애플이 썼다는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또 "삼성전자가 주장하는 국제 표준은 2003년 버전"이라며 "이후 20번 이상 수정됐는데 해당 기술을 그대로 썼는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해당 기술을 실제로 사용한 업체는 통신용 반도체를 만드는 부품업체라고 주장했다.

국내 무선통신 분야의 팀장급 엔지니어인 A씨는 '터보 인코딩' 기술에 대해 "통신용 교신칩을 구동하는 소프트웨어에 구현되기 때문에 관련 프로그램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를 검증하면 양측 주장의 진위를 분명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들까지 감정싸움 벌여

양측의 '감정싸움'도 극에 달했다. 애플 측은 "삼성전자 측으로부터 83쪽 분량의 준비서면을 받았지만 원고의 구체적 주장이 무엇인지는 하나도 담겨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삼성전자 측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을 침해하고 있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면 재판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삼성 측은 "150쪽에 달하는 소장과 83쪽짜리 준비서면을 보냈는데，우리가 받은 것은 달랑 8쪽의 답변서"라고 맞받아쳤다. 또 "애플이 미국에서는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면서 타국 재판에는 무성의하게 임하고 있다"며 "삼성에 자세한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만 하는 것은 재판을 지연시킬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애플 측이 "삼성의 소장이 보완돼야 올바른 답변을 줄 수 있다" "본사에 확인해야 하며 시간이 걸린다"는 식의 발언을 이어가자 "자료를 즉시 확보해서 제출하라.소송을 시작한 지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그런 핑계는 곤란하다"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애플의 삼성전자 맞제소에 대한 재판은 오는 8월12일로 예정돼 있다.

조귀동/심성미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