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약의 '슈퍼판매' 확대를 놓고 의 · 약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한의약' 정의 한 줄을 놓고 이번엔 한의계와 의사단체들이 극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

논란은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한의약육성법 개정안에 '과학적'이라는 문구가 포함되면서 비롯됐다. 개정안은 한의약육성법 제2조1항을 고치면서 한의약의 정의를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하거나 이를 기초로 하여 과학적으로 응용 · 개발한 한방의료행위'라고 새롭게 규정했다. 기존 법률엔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의료행위'로만 규정돼 있었다.

한의약을 확대 규정한 개정안엔 '과학적'이라는 용어가 새로 첨가됐다. '과학적으로 응용 · 개발한 한방의료행위'라는 문구로 한의학의 진료범위를 크게 넓힐 수 있다는 유권해석이 가능해졌다.

종전에는 초음파나 엑스레이 등 첨단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한방의료에 맞게 특화된 진단기기를 개발 · 사용할 수 있다고 한의계는 보고 있다. 그동안 새로운 한의약 관련 기술을 개발할 때마다 한의약의 정의에 발목이 잡혀 다양한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없었던 한의계로선 오랜 체증을 해소한 것이다. 실제로 2006년 서울고법에서 한방병원의 컴퓨터단층촬영(CT) 사용이 불법이라는 판결이 나왔고,최근엔 피부 질환용 의료기기인 IPL(광선치료기)을 사용한 한의사가 고발당하기도 했다.

의사협회는 "과거 불법이었던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합법화할 소지가 크다"며 반발하고 있다.

김기성 의협 사무국장은 "신민석 (의협) 부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비상대책위를 4일부터 가동한다"며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기 전에 범국민적인 반대 캠페인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3일 말했다.

나현 서울시 의사회장은 이날 한의학연구원에 대해 감사원의 감사 청구를 신청했다. 서울시의사회는 한의학연구원이 1조원이 넘는 예산을 운용하지만 사용 내역이 불투명하다"는 점을 집중 부각할 방침이다. 김남호 인천시의사회 회장 등은 지난 주말 복지부 한의약정책관을 공무집행방해죄로 인천지검에 고발했다.

한의계는 의사단체의 실력행사 수위를 지켜본 뒤 대응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