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하순 미국 남부 도시 뉴올리언스.재즈의 고향이자 프랑스풍 저택이 즐비한 이곳에서 앰뷸런스 신제품 등을 선보이는 '긴급차량전시회(EMS Show)'가 열렸다. 이곳에서 강성희 오텍 대표가 전시장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앰뷸런스 등 구급차량을 생산하는 오텍의 강 대표는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긴급차량전시회에 자주 참석한다. 신제품과 신기술 동향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이틀 더 이곳에 머물 예정이던 강 대표 일행을 안내하던 가이드의 표정이 어두웠다. 허리케인이 다가오고 있어 걱정이라는 얘기였다. 상당수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과거에도 허리케인이 자주 왔지만 심각한 피해는 없었다며 개의치 않았다. 진로도 아직 유동적이었다. 저녁에 재즈공연을 보거나 전망 좋은 호텔에서 와인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한 뒤 허리케인을 구경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전시회 참관으로 바빠 뉴스를 제대로 접할 수 없었던 강 대표는 직감적으로 우선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급히 차를 빌린 그는 고속도로로 들어서려 했지만 피난 행렬이 줄을 이루고 있어 진입할 수 없었다. 경찰은 반대 차로로 역주행을 유도했다. 빨리 뉴올리언스를 빠져나가도록 한 것이다. 역주행을 하다 보니 안내판이 보이질 않았다. 애틀랜타로 가는 고속도로로 갈아탈 수도 없었다. 어쨌든 오후 4시에 뉴올리언스를 출발한 강 대표는 다음날 오전 11시에 목적지인 애틀랜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애틀랜타 공항에 있는 TV에서 그는 참혹한 광경을 접했다. 자신이 머물렀던 뉴올리언스 전체가 카트리나의 여파로 호수로 변해 있었다. 프랑스풍 저택은 온데간데 없었다.

강 대표가 아프리카 시장 개척을 위해 케냐를 방문했을 때는 곳곳에서 총을 든 군인들의 위협적인 검문검색에 당황하기도했다. 수단 탄자니아 등을 찾을 땐 출발 전 풍토병 예방주사를 맞는다.

이런 식으로 강 대표가 개척한 시장은 모두 15개국.케냐 탄자니아 수단 리비아 등 아프리카를 비롯해 베트남 인도 이란 이라크 칠레 페루 등 다양하다. 이들 지역에 앰뷸런스나 검진차량 등을 수출한다. 예컨대 케냐에는 벤츠를 기반으로 한 구급차를 12대 공급키로 했고 베트남에는 특장차를 내보내고 있다.

이 회사의 작년 매출은 615억원.이 중 3분의 1가량이 수출로 일궈낸 것이다. 강 대표는 "올해는 수출 비중을 50%로 높이는 게 목표"라며 "이를 위해 인도시장에 심혈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의 10대 재벌인 암텍(AMTEK)그룹으로부터 타타상용차를 개조해 앰뷸런스 냉동차 청소차 등 20여종의 특장차를 개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으며 로열티 180만달러를 선불로 받았다"며 "종합특장차 회사 구축에 대한 컨설팅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텍은 '자기인증 대규모제작자'로 지정받은 업체다. 자체 인증을 통해 차량을 생산할 수 있다. 이 회사가 해외시장을 뚫은 것은 마케팅에 의한 것만이 아니다. 다양한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첫째,이 회사는 적극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특장차를 만들 수 있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 앰뷸런스에 탄 환자는 가급적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두부 손상과 골절 환자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 이는 때로는 목숨과 직결될 정도로 중요하다. 이 회사는 앰뷸런스의 승차감을 개선하기 위해 '풀 에어서스펜션(full airsuspension)'을 개발했다. 상하 좌우의 움직임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쇼크 압소바,중량 센서,에어 벨로즈 등 20여종의 부품이 결합된 정밀 제품이다. 두뇌 역할을 하는 전자컨트롤유니트(ECU)도 붙어 있다. 강 대표는 "이를 개발할 때는 너무 힘들어 과연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서 개발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여러번 했다"며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해 끝까지 밀어붙였다"고 설명했다.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용 전동슬로프,휠체어를 탄 채 탑승할 수 있는 자동차용 슬라이딩리프트도 개발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신제품 인증 우수제품 지정을 비롯해 은탑산업훈장 대통령표창 등 수많은 표창과 포상을 받았다. 이들 기술은 자체 연구를 통해 개발한 것도 있고 해외 기업과의 제휴에 의해 완성한 것도 있다. 강 대표는 예컨대 장애인 차량의 경우 "미국 리콘(Ricon) 및 스웨덴,일본 업체와 제휴를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다양한 제품 구색이다. 강 대표는 "이라크에 공급한 의료용 차량의 경우 앰뷸런스 종합검진차량 수출차량 회복차량 등을 포함해 이동종합병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오텍이 생산하는 특장차는 모두 54종에 이른다. 그는 특히 앰뷸런스의 성능 고급화에 신경을 쓰고 있다. "보다 넓은 공간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갖춘 앰뷸런스를 만들어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다.

이런 생각을 하는 데는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가 앰뷸런스로 병원으로 이송되는 도중에 돌아가셨다"며 "앰뷸런스 성능이 좀 더 좋아져야 위급한 환자를 한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다만 고급 앰뷸런스가 도입되려면 정부의 파격적인 예산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류차량의 경우 연간 8000대의 냉동탑차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셋째,시너지를 통한 원가 절감이다. 의료기기 분야에 진출한 것도 이에 따른 것이다. 강 대표는 "앰뷸런스는 제대로 구급장비를 갖추려면 약 100종의 장비가 들어가는데 이를 수입업체를 통해 구입하면 가격이 올라갈 수 있다"며 "차량 공간에 가장 알맞은 장비를 국산화하거나 국내외에서 구입해 차량과 함께 턴키로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들것'을 국산화했고 몇몇 장비를 개발 중이다.

오텍은 올해 초 광주의 캐리어코리아를 인수해 오텍캐리어(브랜드는 캐리어에어컨)로 사명을 바꿨다. 세계적인 냉동기기 업체인 캐리어의 한국법인 지분 80%를 인수해 대주주가 된 것이다. 이런 결정을 한 것도 글로벌화에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오텍캐리어 대표도 겸하고 있는 강 대표는 "캐리어는 가정용 에어컨도 만들지만 산업용 및 대형 건물의 냉난방 공조시스템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캐리어 미국 본사와 일본 도시바캐리어 중국 캐리어 현지법인들과 협조를 통해 신기술,신제품 정보는 물론 상호보완적 글로벌 아웃소싱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국내에서 시공되는 초고층빌딩 등의 공조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물론 오텍의 해외시장 개척 때 에어컨시장 개척에도 함께 나설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한양대를 졸업한 후 자동차부품 업체와 수입차 업계에서 활동한 뒤 무역업체인 오텍을 인수해 2000년 법인으로 재창업했다. 그는 다양한 기술과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오텍과 오텍캐리어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