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인천시 서구의 주택 공사 현장에서 작업을 하던 김모씨(53)는 건물 외부 비계(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를 이용해 내려오던 중 발을 헛디뎌 9.5m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김씨는 이날 지상 4층 건물의 지붕 방수작업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외부 비계를 이용해 올라갔다가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했다. 김씨가 이용한 외부 비계에는 안전난간대가 설치되지 않았고 작업발판에서 지붕 쪽으로 통하는 통로도 없었다. 여기에다 안전모와 안전대도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했다. 결국 김씨는 안전무방비 상태에서 작업을 하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2009년 3월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N아파트단지 내 조경 공사장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조경작업 경력이 많지 않던 배모씨(38)는 이날 아침 동료근로자 2명과 함께 잔디를 심기 위해 11t트럭에 잔디를 가득 싣고 N아파트에 도착했다.

그는 안전모와 안전화를 착용하고 1.5m 높이밖에 안되는 트럭상단에 올라 잔디를 내리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안전모의 턱끈을 매지 않은 게 결정적 실수였다. 작업 시작 30분쯤 지났을 무렵,배씨는 몸의 중심을 잃고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안전모가 벗겨졌고 머리를 바닥에 부딪쳐 뇌진탕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안전사고에 노출돼 있는 건설현장에선 산재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국내 재해자 9만8645명 중 22.8%인 2만2504명이 건설현장에서 발생했다. 제조업(3만4069명),서비스산업(3만3170명)에 비해 산재건수로는 적지만 종사 인원 대비 산재사고율은 훨씬 높다. 종사자 100명당 산재건수를 보면 제조업은 0.8명,서비스업은 0.2명인 데 비해 건설업은 1.25명에 달한다.

건설현장에서는 사고가 한번 터지면 치명상을 입는다. 지난해 건설업 재해자 가운데 2.7%인 611명이 사망했다. 광업 · 임업 · 기타의 6.5%(582명)보다는 사망률이 낮지만 제조업 1.8%(618명),서비스업 1.1%(389명)에 비해서는 훨씬 높은 수준이다. 특히 추락 사고가 많아 전체 추락 재해자 1만4040명의 50%가 넘는 7322명이 건설현장에서 발생했고 추락 사망 재해자 453명가운데 66.7%(302명)가 건설 재해자다.


한국의 추락 사망자는 선진국에 비해서도 훨씬 많다. 근로자 10만명당 추락 사망자 수는 우리나라가 3.64명으로 미국 0.56명,일본 0.84명,영국 0.15명에 비해 최고 20배 이상 많다. 그만큼 안전설비와 의식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건설 재해가 빈발하는 것은 공기 단축에 대한 집착과 안전의식 부족 때문이다. 4~5년짜리 1000억원 공사를 1년 앞당기면 50억~100억원 정도 절약된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다 보니 공사 발주자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휴일과 야간에도 무리하게 작업을 밀어붙이기 일쑤고 이러한 무리한 공사는 안전사고로 이어진다.

사업주의 공기 단축은 안전시설에 대한 투자를 외면케 만든다. 사업주는 공기만 생각하고 안전은 뒷전이다. 안전시설은 다시 철거할 가시설이기 때문에 공사만 잘 넘기면 그만큼 비용이 절약된다고 생각한다. 이러다 보니 안전사고가 무방비 상태에서 발생한다. 근로자 안전의식도 문제다. "수십년 일해도 안다쳤는데 왜 불편하게 안전모나 안전대를 착용하냐"는 안전불감증이 안전사고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안전에 대한 의식 차이가 운명을 갈라놓은 사례도 있다. 지난 5월 충남 서산의 한 건설현장에서는 처남인 김모씨(42)와 매부인 최모씨(54)가 5층 건물 밖 발판에서 함께 일을 하다가 발판이 무너지면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추락방지용 안전대를 착용한 처남은 멀쩡했고 안전대를 매지 않은 매부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