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속보]“한때 회사가 어려워 우울한 날을 보내고 있을 때 대금소리에 필(느낌)이 꽃혔습니다.당시엔 그 소리가 무슨 소린지도 몰랐는데… 대금을 배워보겠다며 여기저기 다니면서 관심을 갖게 됐고,여기까지 왔네요.”

‘제20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수상자로 선정된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66·사진).그는 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시상식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크라운제과가 부도를 맞고 휘청였던 1990년대 후반으로 시계를 되돌렸다.

윤 회장은 임직원과 점주 고객을 초청해 개최한 첫 공연이 회사 경영에 큰 도움이 됐던 것이 ‘국악의 힘’을 깨달은 계기였다고 말했다.

“대금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국악 공연을 권하기에 직원들과 점주 고객들을 초청해 첫 공연을 열었습니다.처음엔 누가 오겠나 싶어 우리 회사 직원들로 홀을 채웠는데,점주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우리 임직원들은 보조의자로 다 비키고 어르신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는데 어찌나 즐거워하시던지… 그 때 ‘국악이란 게 이렇게 흥이 있는 거구나’를 처음 알게 됐죠.”

회사 앞날이 불투명했던 시기에 국악을 후원하는 데 대해 사내 반응이 처음부터 좋지만은 않았다.

“한 영업책임자가 ‘국악을 좋아하면 회장 개인 돈으로 하지 왜 회사 돈으로 공연하냐’고 해서 많이 서운했습니다.그런데 공연이 끝난 뒤 영업사원들이 매장에 가면 평소 만나주지도 않던 사장들이 직접 나와 대접하더라는 겁니다.‘우리 어머님이 전폭적으로 도와주라고 하셨다’면서요.나중에 회사돈 썼다고 불평했던 사람한테 ‘사과하라’고 농담했죠. (웃음)”

윤 회장은 “국악을 통해 점주와 영업사원들의 대화의 장이 열렸을 뿐 아니라 직원들도 음악을 다양하게 공부하게 됐다”며 “문화를 공유하는 것은 기업의 정체성을 찾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변에 많은 분들(기업인들)에게 무조건 국악을 도와주라고 권하기보단 비즈니스에 활용할 방법을 연구해보자고 얘기한다”며 “솔직히 나도 마케팅에 활용할 방안을 찾지 못했다면 국악을 계속 후원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국악 곡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에는 “누구든 귀가 가는 음악을 골라들으면 된다”며 답을 피했다.그는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등 악기별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국악을 즐기려면 악기부터 선택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며 “저는 대금을 배우다 실력이 안 돼 (배우기 쉬운) 단소로 바꿨는데 그렇게 하다보면 귀가 열리고 음악이 들린다”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요즘엔 창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악기가 없어도 어디 가서든 할수 있는 게 창이잖아요? 가사 틀려도 사람들이 모르니까 뭐라고 하지도 않아요.저는 노래방에 가면 어깨춤이 나도록 ‘이 사~안(山)! 저 사~안!’ 하고 지르면서 시작합니다. (웃음)”

윤 회장은 “언젠가부터 우리가 말하는 음악은 서양음악이고,우리 국악은 저기 문칸방으로 가버린것 같은 느낌을 받아 안타깝다”며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가 음악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정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몽블랑 측이 수상자를 위해 특별 제작한 ‘메세나 에디션’ 순금 펜과 문화후원금 1만5000유로를 받았다.그는 후원금을 국악 명인들의 모임인 ‘양주풍류악회’에 발전기금으로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몽블랑이 1992년부터 12개국에서 문화예술 분야에 뛰어난 후원 활동을 펼친 인사를 선정,시상해온 상이다.윤 회장은 전통 국악,재즈,클래식 등을 아우르는 퓨전 음악회 ‘창신제’,국내 최정상급 국악 명인들의 공연인 ‘대보름명인전’,젊은 국악인을 발굴하는 ‘국악 꿈나무 경연대회’ 등을 개최하는 한편 민간기업 최초의 퓨전 국악단 ‘락음국악단’을 창설하는 등 국악계를 지속적으로 후원해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박영주 이건산업 회장,김영호 일신방직 이사장,이세웅 예술의전당 이사장,이운형 세아제강 회장,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에 이어 일곱번째 한국인 수상자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