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PGA투어 AT&T내셔널 4라운드가 열린 펜실베이니아주 뉴타운스퀘어의 애러니민크GC(파70) 14번홀(파4).그린 앞쪽의 핀을 향해 친 최경주(41)의 두 번째 샷은 그린에 오르지 못하고 에지에 멈췄다. 8m 이상 떨어진 거리.최경주가 퍼팅한 볼은 마운드를 한차례 넘어 내리막을 타더니 홀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 홀 뒷벽을 맞고 떨어졌다.

합계 12언더파로 닉 와트니(미국)와 공동선두가 되는 순간이었다. 최경주는 주먹을 불끈 쥐며 우승을 자신하는 듯했다. 7번홀(파4)에서 '이글성 버디'를 낚았지만 9번홀(파5) 3m,10번홀(파4) 4m 버디 퍼트는 홀을 살짝살짝 벗어나며 애간장을 태웠다. 그러나 11,12번홀(이상 파4)에서 연속 6m 버디 퍼트를 성공시켰다. 와트니는 후반 들어 타수를 줄이지 못하고 있어 역전 우승이 가능해보였다.

자신감이 넘쳤던 탓일까. 15번홀(파4 · 500야드)에서 최경주가 친 드라이버샷은 왼쪽 깊은 러프에 떨어졌다. 거리 부담을 느낀 그는 애용하는 하이브리드 클럽을 빼들었다. 그러나 욕심이었다. 러프 때문에 헤드가 닫히면서 볼은 그린에 못 미쳐 왼쪽 벙커로 들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양발끝 내리막 스탠스'에서 샷을 해야 하는 고약한 라이에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볼은 그린을 맞고 튀어나가 러프에 박혔다.

홀까지는 8m밖에 남지 않았지만 내리막 경사여서 어프로치샷이 쉽지 않은 상황.조심스럽게 친 칩샷은 웨지가 러프에 잡히면서 4m밖에 나가지 못했다. 이어진 내리막 4m 보기 퍼트는 홀 앞에서 왼쪽으로 흘러버렸다. 더블보기를 범하면서 순식간에 와트니와 2타차로 벌어지며 우승을 헌납하고 말았다.

최경주는 "공동선두가 된 뒤 남은 홀이 장타자인 와트니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15번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실수했다"고 말했다. 와트니는 투어 장타 랭킹 12위(299.4야드)다.

그러나 최경주는 2위 상금 66만9600달러를 보태 시즌 총상금 366만5704달러로 상금랭킹 2위에 올라섰다. 데뷔 후 역대 최상위 랭킹이다. 시즌 상금 300만달러 돌파도 2007년(458만달러) 이후 처음이다. 준우승을 차지한 것은 2003년 메르세데스챔피언십,2007년 더 바클레이스,지난해 3월 트랜지션스챔피언십에 이어 네 번째다.

'USA'를 연호하는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와트니는 월드골프챔피언십시리즈 캐딜락챔피언십에 이어 시즌 2승과 통산 4승을 달성했으며 우승 상금 111만6000달러를 더해 418만9223달러로 상금랭킹 1위가 됐다. 와트니는 "최경주처럼 대단한 골퍼의 추격을 뿌리쳐 더욱 값진 우승"이라고 말했다.

대회 주최자인 타이거 우즈는 이날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우승자와 사진을 촬영했다. 우즈의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를 '임대'한 애덤 스콧(호주)은 합계 9언더파 271타로 공동 3위를 기록했다. 3라운드까지 공동 7위였던 위창수(39)는 이날 9타를 잃는 부진 속에 합계 3오버파 283타로 공동 51위에 머물렀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