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미국 중서부 대평원지대의 농민운동에 기반을 둔 인민당이 출범했다. 민주당 공화당 등 기존 정당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농민과 노동자 지지를 목표로 시장이나 경제적 합리성을 벗어난 과격한 정책을 내놨다. 은화를 무제한 발행하겠다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일부러 인플레를 초래해 월가의 금융자본에 타격을 주고 빚더미에 눌린 농민과 노동자를 구해주겠다고 떠들어댔다.

인민당은 연방의회에서 20여석을 차지할 만큼 세력을 키웠으나 얼마 못가 몰락하고 말았다. 일부 농민과 노동자들의 환심을 사기는 했지만 현실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던 탓이다. 대신 포퓰리즘이란 용어를 남겼다. 2차세계대전 후 아르헨티나의 페론도 비슷한 전략으로 정권을 잡았다. 최저 임금을 올리고 급진적 분배정책을 펴면서 대중의 지지를 받았으나 국고가 거덜났다. 살인적 인플레와 실업률로 국민들은 도탄에 빠졌다.

태국의 탁신 총리도 2001년 집권하자마자 모든 국민이 30바트(약 1044원)만 내면 기본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선심정책을 폈다. 도농 간 소득격차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마을마다 100만바트(3480만원)씩 나눠주고 농가 빚을 탕감해줬다. 저소득층을 사로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세금은 치솟아 중산층의 불만을 샀다. 탁신은 2006년 군부 쿠데타로 물러나 해외 망명했으나 그가 뿌려놓은 포퓰리즘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 있다. 탁신을 복권시키려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탁신의 막내 여동생 잉락이 태국의 새 총리로 뽑혔다. 부드러운 이미지에 화해를 내세워 정계 입문 한 달 반 만에 정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탁신의 정치적 유산을 고스란히 계승했다는 점이다. 농민 전용 신용카드 발급,초등학교 입학생 전원(약 80만명)에게 태블릿PC 지급,최저 임금 40% 인상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소속 정당인 푸어타이당의 구호도 '탁신이 생각하고 푸어타이가 행동한다'였다. 벌써부터 '탁신 아바타''태국의 에바 페론'이란 비판도 나온다.

남의 일만은 아니다.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벌이는 포퓰리즘 경쟁이 목불인견이다. 현실을 무시한 선심정책은 세금으로 국민을 매수하는 행위다. 일단 중독되면 끊기 어렵다는 점에서 마약과도 같다. 국민도,정치인도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