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리포트] 노사대치 40일…유성기업 아산공장 가보니
4일 오전 11시 충남 아산시 둔포면 운용리.오랜만에 햇볕이 내리쬔 자동차 부품업체 유성기업 아산공장 주변은 조용했다. 한 달 전만해도 수백명의 노조원들이 공장을 점거한 채 시위를 하고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곳이다.

경찰병력 20여명이 도로에서 공장으로 통하는 굴다리 밑에 서 있었다. 공장 주변엔 5대의 경찰버스가 병력을 태운 채 대기하고 있었고 공장 입구에는 경비용역업체 직원 30여명이 공장을 오가는 사람과 차량을 통제했다. 언제 또 노조원들이 쇠파이프와 죽봉 등을 휘두르며 기습적인 공장 진입을 시도해 지난달 22일 같은 유혈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 굳게 입을 다문 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한 관계자는 "오늘 아침에도 노조원 수십명이 공장 입구쪽으로 진입하려다 경찰이 저지해 돌아갔다"고 전했다.

공장 안은 바깥과 달리 활기가 넘쳤다. 근로자들은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피스톤링 생산 설비를 돌리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직원들의 얼굴마다 피로가 가득했다.

이기봉 공장장은 "직원들이 출퇴근하면서 농성 중인 노조원들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공장 탈의실,휴게실 등에서 잔다"며 "불법점거 사태 이후 두 달 만인 지난달 26일 처음으로 하루 동안 쉬었다"고 말했다. 공장에서 만난 한 직원은 "집에 가지 못하고 먹고 자는 것은 밖에서나 안에서나 매한가지"라며 "그래도 일을 할 수 있는 게 어디냐는 생각에 다들 큰 불만 없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회사 측은 지난달 27일 충청남도청에 열린 노사정협의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29일 양승조 민주당 의원의 면담 요청도 거절하는 등 정치인과 접촉을 피하고 있다. 이 공장장은 "회사와 노조 지회 간의 일인데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민주당 등 외부 세력들이 다 끼어드니 참여할 이유가 없다"며 "이번 사태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노조 측은 공장 앞에 지은 4동의 비닐하우스에서 농성 중이다. 비닐하우스 앞 도로에는 '유성기업 파업투쟁 승리' '야간노동 철폐 민주노조 사수'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경찰은 지난달 22일 유성기업 앞 집회와 관련해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이달 3일 노조원 2명을 구속하고 체포영장이 발부된 5명을 쫓고 있다. 자진 출두한 노조원 26명에 대한 수사와 함께 40여명에 대한 출석 요구서도 보내놓았다.

이날 오전에는 아산 민주노총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현장 관계자는 "파업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고 경찰의 수사로 활동이 위축되면서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약해져 공장으로 복귀하는 노조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사측에 따르면 4일 현재 233명이 공장으로 복귀해 일하고 있다. 전체 노조원(550명) 중 40% 이상이 투쟁대열에서 빠진 셈이다. 사측은 개별적으로 의사를 밝히고 생산라인에 복귀하는 직원들을 지속적으로 받아주고 있다. 이 공장장은 "사측은 불법행위를 중단하지 않고 폭력과 폭언,직원들에 대한 협박 등을 멈추지 않은 상황에서는 노조와 대화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아산 =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