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출장, 저축銀 수사 한창인데…끝내 사퇴
김준규 검찰총장이 4일 비판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사퇴 의사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검 · 경 수사권 조정에 반발해온 검찰 조직을 추스르겠다는 의지라는 게 내부의 해석이지만 검찰 바깥의 시각은 매우 싸늘하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국내 부재중에,또 국민적 관심사인 저축은행의 수사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검찰의 수장이 일방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청와대 측도 상당히 불쾌하다는 반응이었다.

이날 오전부터 김 총장과 대검 간부들은 사퇴 의사를 담은 공식 발표문 초안을 검토하는 데 주력했다. A4 용지 6장 분량의 발표문 곳곳에서 수사권 조정 절충안을 통과시킨 정치권과 경찰에 대한 불만이 드러났다. 김 총장은 "이번 사태의 핵심은 '합의 파기'이지 대통령령이냐 법무부령이냐의 문제가 아니다"며 처음부터 여야 정치권을 직접 겨냥했다.

그는 "지켜지지 못할 합의라면 처음부터 해서도 안 되고,합의에 이르도록 조정해도 안 됐고,합의를 요청했었어도 안 된다"며 "현 상황에서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 검찰총장인 저라도 책임을 지는 수밖에 없다"고 불쾌한 심중을 여과없이 내비쳤다. 경찰에 대해서도 "역사의 흐름을 거꾸로 거슬러 갈 수는 없다"고 격한 목소리를 냈다.

김 총장의 사표가 수리되면 임기제가 도입된 이후 중도퇴임한 역대 총장으로서는 열 번째다. 검찰 내부의 혼란이 일단락될지도 미지수다. 수사권 조정 문제로 경찰에 '밀린'듯한 검찰 내부의 정서는 다독였을지 몰라도 검찰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이 워낙 나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김 총장의 사퇴와 관련,"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검찰총장의 사퇴가 별 의미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고위 관계자는 "총장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조만간 교체될 텐데 사표를 내든 말든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일각에선 다소 불쾌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한 참모는 "낼모레 숨질 사람이 응급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떼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앞으로 이런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남아프리카를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김 총장의 사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표정 변화도 없었다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박 대변인은 사표 수리 여부에 대해 "이 대통령이 귀국하면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보고할 예정이며 그때 결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미 김 총장 후임 인선 작업을 벌이고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대통령이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현지에 나가 있는 상황에서 사표를 제출하는 것은 공직자로서 도리에 어긋난다"며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이고운/홍영식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