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외에서 장출혈성대장균(EHEC),뇌수막염,수족구병,간질성 폐렴 등이 등장해 전염병 예방에 관한 경각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국내 EHEC 감염자 수는 2004년 118명으로 정점에 이른 후 2007년 41명으로 줄었으나 2009년 62명,지난해 56명으로 다시 늘었다. 전염병이 증가하는 건 단체급식 확산(음식의 대량 조리로 인한 식중독 증가),늘어난 해외여행객과 외국인 왕래,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오염된 수입 식품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감염자 수를 줄이기 위해선 손씻기,다중 이용시설에 덜 가기,조리 시 철저한 위생관리 등이 권장되고 있다.



◆대장균도 병원성 띠면 치명적으로 돌변

유럽 16개국에서 EHEC 감염증으로 2687명의 환자와 1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외신들은 전했다. 그 합병증인 용혈성 요독증후군으로 인해 839명의 환자와 2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감염 원인을 놓고 의사들 사이에 스페인산 채소와 독일산 샐러드용 새싹채소로 나뉘어 갑론을박하다가 최근에는 새싹채소류가 더 유력하고 둘 다 해당될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대장균은 대부분 분변으로 전염되기 때문에 유럽에서 유기농채소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분변을 거름으로 사용한 것이 한 원인으로 꼽힌다.

대장균은 식중독의 주된 원인균으로 조금만 부주의하면 장에 염증이 생겨 복통 설사로 고생하지만 치명적이지는 않다. 이 때문에 대장균 예방백신은 개발열기가 별로 뜨겁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출현한 EHEC처럼 맹독성일 경우엔 장출혈을 일으켜 합병증으로 '용혈성 요독증후군'(신장 기능 저하로 노폐물 배설이 어렵고 백혈구 혈소판은 증가하되 적혈구는 감소함)까지 생겨 생명을 위협하게 된다.

구강부터 항문까지 체내 소화기관엔 다양한 균이 살고 있다. 유산균 대장균 웰치균 클로스트리디움균과 각종 곰팡이 등 종류는 400종을 넘고 숫자로는 100조개 이상의 균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 세균의 역할은 모두 밝혀지지 않았으나 건강할 때는 소화를 돕고 정상세균총(normal flora)을 이뤄 유익균이 유해균을 억제하며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다. 하지만 갑자기 특정 균이 증식하거나 만성질환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지면 정상세균총이 깨지거나 장에 존재하던 정상세균들이 다른 부위로 전이돼 감염을 유발하고 질병에 걸리게 된다.

◆젊은층과 어린이가 주의할 뇌수막염과 수족구병

최근 논산훈련소 등에서 세균성 뇌수막염이 발생해 전군을 대상으로 한 예방접종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세균성 뇌수막염은 수막구균이 뇌수막에 감염돼 일어난다. 감염될 경우 20~30%가 사망 또는 반영구적인 지적장애를 입게 될 정도로 치명적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군대나 학교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사람은 건강하더라도 보균자가 균을 퍼뜨릴 경우 위험한 처지에 놓이며 유행 지역에선 어느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며 "요즘 젊은층은 운동량이 부족하고 비만하며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 면역력 부족으로 뇌수막염에 잘 걸린다는 가정은 그럴싸하지만 구체적인 근거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군에서의 집단 접종 필요성은 국방부가 감염 정보를 공개해야 비용 대비 효과를 가늠할 수 있다. 다만 뇌수막염이 일단 발병하고 나면 병세가 워낙 빠르게 진행돼 백신을 접종하는 게 최선의 예방책이다. 바이러스성 뇌수막염 백신은 널리 보급된 반면 세균성 뇌수막염 백신은 국내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뇌수막구균 백신은 일단 맞기만 하면 접종자의 90% 이상에서 항체가 생성된다.

유소아에서 흔한 수족구병은 콕사키바이러스 A16과 장바이러스(EV)71에 의해 주로 발생한다. EV 71에 의한 수족구병은 콕사키바이러스보다 더 위중한 합병증(뇌간 뇌염,폐부종 등)을 일으킨다. 한국은 주변국과 달리 2009년 이전까지 EV 71로 인한 신경계 합병증을 경험한 적이 없어 주의가 요구된다.

이 밖에 간질성 폐렴은 원인 미상이지만 해당 증상을 보이는 사람의 상당수는 새로운 균에 노출됐고 일부는 면역력 저하로 추정된다. 말라리아와 일본 뇌염균은 한반도 기온 상승으로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추세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