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인물탐구 - 김종식 타타대우상용차 사장
엔진 연구원·18년 다국적기업 CEO '도전 DNA'
교수 꿈 접고 25t 덤프트럭 모는 '소통의 경영자'

"여직원에게 개떡 얻어먹은 사장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

'영화배우 같은 멋진 마스크와 영국 신사를 닮은 단정한 자세'(조동성 서울대 교수의 표현)를 한 김종식 타타대우상용차 사장(56)이 개떡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공학박사 출신에 18년간의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CEO),교수경력까지…. 화려한 '스펙'을 가진 그에게 개떡 이야기는 왠지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CEO & 매니지먼트] 인물탐구 - 김종식 타타대우상용차 사장
지난달 말 타타대우 전북 군산 공장의 사장 집무실.김 사장이 잠시 문을 열고 나왔다. 그 때 한 여직원이 비서에게 무언가를 전해주고 황급히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비서는 "사장님,여기 개떡 있어요. 저 직원이 사장님 전해드리라고 갖고 왔답니다"고 했다.

김 사장은 그 여직원을 불렀다. "웬 개떡이에요?" "사장님이 어릴 적 가난했을 때 개떡을 자주 드셨고,좋아했다고 하셨잖아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개떡을 만들었습니다. 개떡 드시고 힘내세요. "

김 사장은 2009년 10월 타타대우상용차 사장 취임 시 "지금부터 사장실 방문을 활짝 열어놓겠다"며 '소통경영'을 강조했다. 김 사장은 "1년 반이 지난 지금,이름도 잘 모르는 여직원으로부터 개떡을 얻어먹을 정도가 됐으니 소통경영이 그저 수사(修辭)로만 그친 건 아니라는 게 입증되지 않았냐"며 웃었다.

◆인생은 도전

김 사장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는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 부친의 사업 실패로 거리에 나앉을 판이었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상경했다. 부모님은 사업 재기에 여념이 없었고,그는 중학교 때부터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시골 어린이에게는 모든 게 낯설었다. "공부만이 살길이었죠." 경복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며 엔진에 흥미를 갖게 됐죠.예전부터 쿵쾅거리며 고동 치는 심장소리를 좋아했습니다. 엔진은 기계에서 사람의 심장 같은 역할을 합니다. 아마 기계에도 생명이 있다면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게 엔진일 겁니다. "

엔진에 빠진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일리노이공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1986년 미국 퍼듀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 해군사관학교 교수직을 제안 받았다. 하지만 좀 더 도전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당시 세계 엔진업계를 선도했던 미국 커민스사였다. 이곳 중앙연구소에서 엔진연구에 파묻혀 살았다. 3년 뒤 '도전 DNA'가 다시 그를 자극했다. "연구소에서 엔진 단면만 쳐다보기에는 세상이 너무 넓어보였습니다. " 연구소를 박차고 나와 제품기획,국제마케팅부서로 옮겼다. 1991년 커민스가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자 그는 한국 대표로 취임했다. 2000년 커민스 동아시아 총괄대표를 거쳐 2003년엔 커민스의 아시아 17개국 총괄본부장으로 승진했다.

◆꿈꾸던 교수를 버리고 선택한 타타대우

CEO로서 18년.이제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됐다. 2009년 초여름.윤은기 당시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원장(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과 조동성 서울대 교수가 MBA 강의를 맡아달라고 제의했다. 다국적기업의 CEO로 활동하며 쌓은 글로벌경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후학들에게 가르쳐달라는 요청이었다. 김 사장은 커민스 동아시아 총괄본부장을 하면서 몇몇 대학에 겸임교수로 강의한 적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마음 속에 담아뒀던 꿈을 펼칠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

그러나 불과 3개월 후 새로운 도전이 그를 시험대에 올렸다. 옛 대우자동차의 상용차 사업을 인수한 인도 타타그룹에서 새로 출범하는 타타대우상용차의 CEO직을 제안해 왔다. "20년 가까이 CEO로 살아왔는데 아쉬움이 없었고,오랫동안 꿈꿨던 교수직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

타타자동차의 라비칸트 부회장과의 면접에서 그는 '대담한' 조건을 내걸었다. "이미 대학에서 9월부터 12월까지 강의를 약속했다. 학생들과의 약속인데 지켜야 한다. 연말까지 주 3회씩 강의 시간을 내는 것을 허락해 주거나 아니면 내년에 취임할 수 있도록 해달라.둘 다 어렵다면 사장 제안을 거절하겠다. "

기업의 핵심가치로 신뢰를 표방하고 있는 타타그룹이 김 사장을 최종 낙점한 데는 이처럼 약속을 중시하는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김 사장은 "타타그룹은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데 더 집중하는 회사다. 타타그룹이 아니었다면 지금은 강단에서 학생들과 호흡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소통과 현장경영

2009년 하반기.새 주인을 맞은 타타대우는 할 일이 산적해 있었다. 김 사장은 취임을 미룰 수 없었다. aSSIST 측에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곧장 군산으로 내려가 취임식을 가졌다. 그는 "10년 후 타타대우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바꾸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존경받는 기업은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어야 하고,체계적인 교육과 경력관리 시스템을 통해 회사와 동반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첫 단추가 소통경영이다. 취임 후 사장실 방문을 활짝 열었다. 임직원은 언제든 사장실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결재는 24시간 이내,언제든지 이메일과 휴대폰으로 이뤄진다. 고리타분하고 형식에 치우쳤던 경영현황 설명회는 이제 타타대우에서 가장 중요하고 재미있는 소통의 장으로 바뀌었다. 사내동아리 9인조 오케스트라와 사내합창단 공연,스포츠댄스로 시작되는 경영설명회에는 고객과 직원들의 소리를 담아 그들의 의견을 함께 듣고 공유하는 시간이다. 김 사장 취임 후 군산공장에는 '미니 MBA 교실'이 개설됐다. 김 사장은 격주로 수요일 저녁마다 팀장급을 대상으로 MBA 강의를 직접 한다. 오는 13일 졸업식에서 60여명의 제자들이 '1기 졸업장'을 받는다.

김 사장은 작년 초 정비센터 현장을 방문했을 때 트럭기사로부터 뼈 있는 충고를 들었다. "트럭회사 사장이면 트럭을 몰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김 사장은 2개월간 운전학원을 다니며 대형트럭 면허를 땄다. 그후 25t짜리 덤프트럭을 몰고,뒷좌석 쪽잠도 경험했다. 임원들도 트럭 면허를 따기 시작했으며 일부 여성 직원들까지 동참했다. 신차를 출시할 때 임원들과 군산공장에서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까지 220㎞의 트럭 로드쇼를 벌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 사장의 '인생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쉰이 넘으니까 점점 보수적으로 돼 간다는 느낌이 들어 1년에 한 가지씩 새로운 걸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작년에는 대형트럭 운전을 배웠고,올해에는 클라리넷을 배우고 있다. 트럭면허를 딴 것은 고객과 시장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였고,클라리넷은 훗날 아들의 결혼식에서 연주하기 위해서란다. 이 정도면 멋쟁이 CEO,멋쟁이 아빠가 아닐까.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