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철 칼럼] 너무 허전한 가계빚 대책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얼마 전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 나와 감독당국의 수장으로서 고민하고 있는 금융이슈 10가지를 털어놨다. 기자의 주목을 끈 것은 권 원장의 고민보따리에서 제일 먼저 튀어나온 문제가 가계부채라는 점이다.

8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의 심각성에 경고음이 울린 지가 오래전인데 여전히 최우선의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가계빚이 국내총생산(GDP)과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9년 말 기준으로 각각 86%와 153%로 치솟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를 훨씬 웃도는 위험수위에 이미 근접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금융당국은 가계부채관리를 놓고 서로 엇갈린 신호를 보내며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 지난달 말에서야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종합대책이라는 것이 이런저런 규제를 통해 은행이나 제2금융권의 대출을 줄이겠다는 내용이 거의 전부다. 은행의 예대율 규제,영업점 평가 때 가계대출실적 제외,금리상승기 고객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변동금리대출 축소 등이 고작이다. 당국으로선 이 정도의 대책만 차질 없이 시행해도 가계부채가 폭발하는 상황으로까진 안 갈 것으로 기대하는 듯하다.

하지만 대출을 직접 통제하는 식의 기술적 조정만으로 부채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요인을 최소화하고,지더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소득 증가가 따르지 않는 한 통제 효과는 제한적일 뿐이다.

빚을 지는 이유를 알면 그 해법도 보인다. 대부분의 가계 빚은 주택 대출이고, 그 다음은 무거운 교육비 지출 등에 따른 생활자금이나 사업자금 마련용이다. 결국 주택 값을 지속적으로 안정시키고 교육비 부담을 낮추는 것이 빚 관리의 최우선 순위다. 동시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가계의 소득 창출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만이 빚 부담을 견뎌낼 수 있는 확실한 버팀목이 된다.

터지기 직전의 빚 폭탄을 눈앞에 두고 일자리 창출 같은 장기 대책을 얘기하는 게 한가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좋은 일자리만이 빚을 줄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유일한 해법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권 원장이 고민보따리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제일 먼저 꺼내며 심각성을 호소한 데 대해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고 비판한 것도 알맹이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정부와 여당이 성장잠재력이나 일자리 창출 여건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은 등한시한 채 무책임한 복지 포퓰리즘에만 경도되고 있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빚더미의 중량을 줄이려는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특히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법인세를 인하키로 한 기존의 약속을 뒤엎으려는 집권 여당의 한없는 가벼움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법인세 인하는 한국을 기업하고 싶은 나라,투자하고 싶은 나라로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유인책이다. 이를 걷어차면서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가.

답답하기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교육 의료 등 서비스 분야의 규제 철폐를 놓고 관계 부처 간에 수년째 입씨름만 벌이고 있을 뿐이다. 서비스산업이 일자리 창출의 보고라고 외치면서 정작 구체적인 해법 도출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당국의 빚 통제가 시작되면 서민들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경제 양극화로 자금 수요가 커진 서민들은 금융회사 문이 닫히면 사(私)금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의 대출 관리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빚을 감당할 수 있는 가계의 능력을 키워주는 일이다. 빚 대책이 금융회사 금고를 틀어막는 단순 통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일자리가 빠진 가계부채 대책은 그래서 허전하다.

고광철 논설위원 / 경제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