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팔다리 없어도 좋아/ 살아 있기만 해/ 이렇게 두 눈 뜨고/ 꼭 살아 있기만 해/ 살아 있는 지옥이 훨씬 더 좋아.'('신우염' 부분)
한때 불교 승려가 됐다가 환속하기도 했던 시인은 1974년 열네 살 연하의 한 여인을 만나 1983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딸 하나를 두고 함께 살아온 지 만 28년.민주화운동의 투사와 학자의 옷을 번갈아 입으며 우리 역사와 정서,선(禪),사회 문제를 넘나드는 방대한 작품 세계를 펼쳐온 고은 시인(78)이 문학인생 53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시집을 내놨다. 부인인 이상화 중앙대 영문과 교수(64)에게 바치는 《상화 시편:행성의 사랑》(창비 펴냄)이다.
약 25년 동안 5600여명의 인물로 한국 역사를 더듬어 온 연작시 시리즈 《만인보》를 끝낸 지 1년여 만이다. 《만인보》를 엮으면서 틈틈이 써온 시들을 모아 만든 시집 《내 변방은 어디 갔나》(창비)도 함께 출간했지만 역시 눈길이 가는 것은 아내를 향한 연시집이다.
그는 6일 서울 무교동의 한 식당에서 "실은 가파른 시국을 견뎌야 했던 1980년대 후반에 이미 '상화'(아내)를 노래하고 싶었는데 아내가 만류했다"며 "이제야 쓰게 됐다"고 말했다.
"1980년대에 썼다면 지금과 같은 생활시가 아니라 '오 나의 태양'하는 식의 몽환적인 시가 됐겠죠.아마 《접시꽃 당신》을 쓴 도종환 시인 다음은 가지 않았을까요?(웃음) 아내에 대한 기억과 사랑은 어떤 드라마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티끌 같은 시간들의 집적인 것 같아요. 상화의 사랑이,상화와의 삶이 없었다면 아마 15년 전쯤 저는 죽었을 테고 시집 《조국의 별》(1984년) 이후 많은 결실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제 작품들은 아내와의 합작품입니다. "
부부의 사랑이 세월따라 이렇게 깊어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만큼 시편들은 절절하다.
'자주 둘의 입에서/ 하나의 말이 나와버린다/ 희곡 속의 화기애애한 단역들/ 이구동성 그대로/ 아니/ 어느 생에서/ 둘이 짰던 새금파리 두쪽 나눠가진 합심 그대로.'('동시발화(同時發話)' 부분)
신학자 안병무 씨의 수유리 집 뜰에서 올린 결혼식,대학에서 강의하고 퇴근하는 아내를 데리러 자전거를 끌고 정거장에 나가던 일상,원고지 열 장을 쓰고 나면 아내에게 달려가 임신한 배를 쓰다듬던 기억 등이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시인은 "각자 자신의 생을 사는 것이니까 (다른 부부들에게) 교훈이나 충고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굳이 물어온다면 아내를,지아비를 존경하는 게 우선이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