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과 흥국화재가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를 사기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골드만삭스로부터 안전하고 수익성도 높다는 설명을 듣고 부채담보부증권(CDO) 펀드를 매입했지만 결과적으로 투자한 돈 439억원을 모두 날렸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에서도 사기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유형의 사건에 대해 국적을 이유로 흥국생명을 옹호할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한국 금융사들은 언제까지 이런 단순 사기에 돌아가면서 걸려들 것인지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교묘하게 설계된 파생상품을 외국계 IB의 말만 믿고 선뜻 투자한 곳이 이미 한두 곳도 아니요 한두 해의 일도 아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말 CDO에 투자한 국내 금융사는 흥국생명을 포함, 모두 15개다. 8억2000만달러를 투자해 70%를 잃었다. 우리은행은 2004년부터 4년간 CDO,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파생상품에 15억8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전액을 날렸다. 시장성도 없는 증권을 손실보상도 없고 손실액 상한도 없이 말그대로 정말 순진하고 무식하게 투자했다가 몽땅 잃었다. SK증권 대한생명 등 7개사는 1997년 JP모건과 외환파생상품인 토털리턴스와프(TRS)를 체결했다 외환위기로 8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한국투자공사(KIC)는 2008년 메릴린치 우선주에 20억달러를 투자했다 주가가 폭락해 평가손이 50%를 넘는다. 이런 사례가 하나둘이 아니다. 모두가 쉬쉬하면서 숨기고 있을 뿐이다.

이런 일이 계속되는 이유는 골드만삭스 따위의 이름만 들으면 오금을 저리는 풍토 때문이요 국제 금융에 대한 무지와 콤플렉스 때문이다. 외국계 IB들은 특히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이런 상품들을 한국 금융회사들에 집중적으로 판매했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첨단 금융기법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한국 금융사들을 고의적으로 기만했다는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당시에는 정부조차 이런 무모한 투자를 금융의 국제화요 금융허브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착각하고 장려했다. 산업은행이 부도 직전의 리먼을 인수하겠다고 부산을 떨었던 것도 사기 사건이 빈발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수장들이 대거 외국계 금융사에 근무하던 인물들로 채워진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투자손실을 일종의 세계화 수업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손실액이 너무도 크고 같은 유형의 실패가 되풀이되고 있다. 심지어 이 과정에 부조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한국 내 사정을 잘 아는 검은머리 브로커가 개입되고,누군가가 투자를 강제하거나 주선하는 등의 부패 사슬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다. 검찰과 금융감독 당국은 차제에 금융사기 사건들을 철저히 조사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