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급락…시장평가도 냉담
지난 5일 오후 6시 서울 계동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엔 '비상'이 걸렸다. '하이닉스반도체 유력 인수 후보기업으로 거론돼온 현대중공업 내부 실무진이 지난 주말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 등 경영진에 인수와 관련해 부정적인 입장을 담은 보고서를 올렸다'는 본지 가판 기사가 나가면서다.
이 사장은 이날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직 인수전 참여 여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경영진은 밤새 긴급 회의를 가졌다. 그동안 시장에선 현대중공업이 8일 하이닉스 인수의향서(LOI)를 당연히 낼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빨리 최종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판단해서다. 다음날인 6일 오전.현대중공업은 하이닉스 인수와 관련해 인수의향서를 제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실무진 부정적 보고서,전략 급선회
업계에선 현대중공업이 일단 인수의향서를 낼 것으로 예측해 왔다. 대다수 언론도 현대중공업의 인수의향서 제출을 기정 사실화했다. 범 현대가(家)가 현대건설 현대종합상사 현대오일뱅크 등에 이어 옛 현대전자인 하이닉스를 되찾고 조선업에 쏠린 사업구조를 다각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애널리스트들도 현대중공업이 하이닉스를 인수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당초 예상과 달리 현대중공업의 속사정은 복잡했다. 내부 실무진은 시뮬레이션 작업을 통해 하이닉스를 인수할 경우의 리스크를 따져 봤다. 일부 장점도 있지만 △향후 10년간 최소 60조원 이상 투자 필요 △10년간 10조~15조원가량의 현금유출 가능성 △태양광과 반도체 사업의 제한적인 시너지 효과 △최악의 경우 그룹 전체의 위기 가능성 등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보고서는 지난 주말 현대중공업 고위층에 전달됐다. 현대중공업이 시장 예상을 뒤엎고 하이닉스 인수를 포기한 이유다.
◆냉정한 시장 판단,꼬이는 대형 M&A
시장의 냉정한 평가도 현대중공업의 인수전 불참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초 주당 51만1000원이었던 현대중공업 주가는 하이닉스 인수 검토설이 나온 지난달 8일부터 급락해 41만5000원까지 밀렸다. 시장에선 하이닉스 인수를 통한 시너지 효과가 수조원의 자금을 들여 확보할 만큼의 가치엔 미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시장의 냉정한 경고였다.
2009년 9월 1차 매각 당시에도 효성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하기 위해 의향서를 단독 제출했지만,시장의 냉담한 반응과 주가 폭락으로 두 달 만에 인수의향을 접었다.
M&A(인수 · 합병)업계 관계자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사태 이후 승자의 저주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대형 매물이 나올 때마다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당분간 M&A시장에선 하이닉스를 비롯해 대형 매물이 나올 때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중공업 주가는 이날 하이닉스 인수전 불참 선언 이후 6.37%(2만9000원) 상승한 48만4000원에 장을 마쳤다. 하이닉스는 새 주인 찾기가 난항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5.36%(1500원) 하락한 2만6500원으로 마감했다.
장창민/송종현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