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의 눈물과 3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평창이 해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6일(현지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총회를 열고 강원도 평창이 독일 뮌헨, 프랑스 안시를 제치고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됐다고 밝혔다.

평창의 꿈이 이루어지기까지는 12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1999년 겨울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평창은 처음으로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아시안 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올림픽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평창의 첫 도전은 똑같이 2010년 유치 의사를 밝힌 전라북도 무주와 일단 국내 경쟁을 거쳐야 했다. 경합 끝에 인구 4만명에 불과했던 평창이 국내 후보지로 결정돼 올림픽을 향한 본격적인 첫 발을 내딛었다.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던 평창은 2003년 7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기대 이상 선전을 했다. 겨울 스포츠가 발달한 캐나다 밴쿠버와 붙어 1차 투표에서 51대 40으로 이긴 것이다. 그러나 2차 투표에서 유럽 국가들이 밴쿠버에 표를 몰아주면서 53대 56, 단 3표 차이로 고배를 마셔야 했다.

평창은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선언하며 재도전을 했다. 이에 1차 도전 당시 경합을 벌였던 무주가 "평창이 2010 유치 실패 시 다음 대회 유치 우선권은 무주에 준다"는 4년전 합의서를 꺼내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국제스키연맹(FIS) 실사에서 무주 스키장이 국제대회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서 평창의 두 번째 도전은 계속됐다.

2007년 2월 실사에서 최고점을 받은 평창은 빈틈없는 준비로 유치 가능성을 높여갔다. 그러나 2007년 7월 과테말라에서 열린IOC 총회에서 평창은 러시아 소치에 4표차로 또 다시 역전패를 당하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두 번의 실패를 딛고 곧바로 삼세번 도전을 선언한 평창은 이제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유치 활동에 나섰다. 유치위원회는 전 세계를 누비며 IOC위원들에게 평창이 올림픽을 열어야 하는 당위성을 역설했고 총회가 열린 더반에서는이명박 대통령,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가 프레젠테이션에 나서 '감동적인 PT'로 IOC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마침내 평창은 꿈을 이루었다.

한경닷컴 경제팀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