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인물열전] (59) 제갈각(諸葛恪), 투항자 의심한 부하의 목을 베어 '吳의 골칫거리' 丹陽의 마음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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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삼국지》 '오서 제갈각전(諸葛恪傳)'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남다른 재능과 민첩한 사고로 손권의 인정을 받은 제갈각이 절도(節度)라는 직책을 잠시 맡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군대의 식량을 관장하며 번잡한 문서를 다루는 직책이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제갈각은 직책을 버리고 장수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오나라에는 난공불락의 지형으로 둘러싸인 단양(丹陽)이 골칫거리였다. 산세도 험하고 백성들의 성향이 강퍅해 조정의 손이 닿지 않아 도무지 관리가 안 되는 곳이었다. 제갈각은 이곳을 다스려 보겠노라고 호언장담했다. 3년만 시간을 주면 그곳의 백성들을 교화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정의 중론은 대체로 이러했다.
"단양군은 지세가 험준하고 오군,회계,신도,파양 네 군과 인접해 있으며 주위가 수천 리에 산과 계곡이 무수히 포개져 있고 외지고 깊은 산속에 사는 사람들은 일찍이 성읍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며 도망자나 오랫동안 사악한 행위를 한 자는 모두 이곳으로 달아나 숨어 있습니다. 산속에서는 구리와 철이 생산되므로 직접 병기를 만듭니다. 그곳 습속은 무예를 좋아하고 싸움을 익히며 기력(氣力)을 높이 숭상합니다. (…)그들은 싸울 때는 벌이 이르는 것처럼 하고 지면 새처럼 사방으로 달아나 버립니다. 그래서 이전 시대부터 지금까지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삼국지 오서 제갈각전)
지형학적으로 보더라도 도저히 평정할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제갈각의 아버지 제갈근도 아들이 이런 곳으로 부임해 가면 집안을 일으키기는커녕 망하게 할 수도 있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제갈각은 단호했다. 결국 손권은 제갈각을 무월장군(撫越將軍)으로 임명,기병 300명을 주어 산월족 토벌을 담당하는 동시에 단양 태수를 겸하도록 했다. 그때 제갈각은 서른두 살이었다.
제갈각은 임지에 이르러 네 군에 딸린 성의 관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각자 자신들이 관할하는 지역을 지키되 현지인들에게 어진 마음으로 교화하라고 전했다. 관문을 지키는 장수들에게도 병사들을 험준한 곳에 배치,방어만 하고 토호들의 군대와 교전을 피하도록 지시했다.
곡식이 다 익으면 씨앗 한톨도 남기지 않고 수확해 조정에 불만이 있는 자들에게는 곡식을 배부하지 못하도록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그러자 험준한 산속에서 생활하며 굶주린 자들이 한두 명씩 투항하기 시작했다. 제갈각은 또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투항한 사람들을 핍박하거나 진정성을 의심하지 말고 교화하고 위로하라고 명했다.
그런데 단양현의 호항(胡伉)이란 자가 투항한 주유(周遺)를 체포하는 일이 벌어졌다. 주유는 사악한 무리 중 한 명인데,겉으로는 복종하는 척하면서 딴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호항이 그를 붙잡아 제갈각이 머무는 관소로 보내온 것이다. 제갈각은 호항이 자신의 명을 어겼다며 목을 베 사람들에게 보이고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했다.
이 같은 사실이 단양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제갈각의 진심이 통하기 시작했다. 노인들도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와 오나라의 백성으로 거듭났다. 불과 1년 만에 1만여명이 복종했다. 손권은 그의 공로를 인정하고는 상서복야 설종(薛綜)을 보내 제갈각의 노고를 치하하도록 했다.
이렇듯 조직의 리더는 분명한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때론 자신에게 적의를 품거나 경계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인내심을 갖고 그 이면의 벽을 허물도록 배려하는 마음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남다른 재능과 민첩한 사고로 손권의 인정을 받은 제갈각이 절도(節度)라는 직책을 잠시 맡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군대의 식량을 관장하며 번잡한 문서를 다루는 직책이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제갈각은 직책을 버리고 장수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오나라에는 난공불락의 지형으로 둘러싸인 단양(丹陽)이 골칫거리였다. 산세도 험하고 백성들의 성향이 강퍅해 조정의 손이 닿지 않아 도무지 관리가 안 되는 곳이었다. 제갈각은 이곳을 다스려 보겠노라고 호언장담했다. 3년만 시간을 주면 그곳의 백성들을 교화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정의 중론은 대체로 이러했다.
"단양군은 지세가 험준하고 오군,회계,신도,파양 네 군과 인접해 있으며 주위가 수천 리에 산과 계곡이 무수히 포개져 있고 외지고 깊은 산속에 사는 사람들은 일찍이 성읍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며 도망자나 오랫동안 사악한 행위를 한 자는 모두 이곳으로 달아나 숨어 있습니다. 산속에서는 구리와 철이 생산되므로 직접 병기를 만듭니다. 그곳 습속은 무예를 좋아하고 싸움을 익히며 기력(氣力)을 높이 숭상합니다. (…)그들은 싸울 때는 벌이 이르는 것처럼 하고 지면 새처럼 사방으로 달아나 버립니다. 그래서 이전 시대부터 지금까지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삼국지 오서 제갈각전)
지형학적으로 보더라도 도저히 평정할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제갈각의 아버지 제갈근도 아들이 이런 곳으로 부임해 가면 집안을 일으키기는커녕 망하게 할 수도 있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제갈각은 단호했다. 결국 손권은 제갈각을 무월장군(撫越將軍)으로 임명,기병 300명을 주어 산월족 토벌을 담당하는 동시에 단양 태수를 겸하도록 했다. 그때 제갈각은 서른두 살이었다.
제갈각은 임지에 이르러 네 군에 딸린 성의 관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각자 자신들이 관할하는 지역을 지키되 현지인들에게 어진 마음으로 교화하라고 전했다. 관문을 지키는 장수들에게도 병사들을 험준한 곳에 배치,방어만 하고 토호들의 군대와 교전을 피하도록 지시했다.
곡식이 다 익으면 씨앗 한톨도 남기지 않고 수확해 조정에 불만이 있는 자들에게는 곡식을 배부하지 못하도록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그러자 험준한 산속에서 생활하며 굶주린 자들이 한두 명씩 투항하기 시작했다. 제갈각은 또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투항한 사람들을 핍박하거나 진정성을 의심하지 말고 교화하고 위로하라고 명했다.
그런데 단양현의 호항(胡伉)이란 자가 투항한 주유(周遺)를 체포하는 일이 벌어졌다. 주유는 사악한 무리 중 한 명인데,겉으로는 복종하는 척하면서 딴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호항이 그를 붙잡아 제갈각이 머무는 관소로 보내온 것이다. 제갈각은 호항이 자신의 명을 어겼다며 목을 베 사람들에게 보이고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했다.
이 같은 사실이 단양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제갈각의 진심이 통하기 시작했다. 노인들도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와 오나라의 백성으로 거듭났다. 불과 1년 만에 1만여명이 복종했다. 손권은 그의 공로를 인정하고는 상서복야 설종(薛綜)을 보내 제갈각의 노고를 치하하도록 했다.
이렇듯 조직의 리더는 분명한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때론 자신에게 적의를 품거나 경계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인내심을 갖고 그 이면의 벽을 허물도록 배려하는 마음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