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란 단어에는 '감탄하라'는 뜻이 내포된 것 같다. 메디치 같은 전설적 부자들과 그들이 후원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의 화가들,화가들이 완성한 명작들을 떠올리면 감탄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대 미술이론과 교수가 쓴 《상인과 미술-서양미술의 갑작스런 고급화에 관하여》는 르네상스와 르네상스 문화에 대한 전복적 해석을 담은 책이다. 부와 천재,인문주의 시대로 르네상스를 바라보는 사고틀을 부정한다.

저자는 중세 유럽 경제사 연구자인 로버트 로페즈의 '르네상스 장기 불황론'을 빌어,르네상스 시기는 심각한 불황기였다고 말한다. 중세 때 안정적으로 성장하던 유럽 경제는 르네상스 시기 200여년간 대불황의 늪에 빠졌다. 14세기 중엽부터 이어졌던 금융시장 붕괴,흑사병,기근,전쟁 등으로 중세 후기 번영이 초토화됐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도 사치품 시장만큼은 활황을 누리는 데 이는 부의 양극화 현상으로 해석한다. 르네상스는 지배세력의 흥망주기가 빨라지는 귀족사회였는데 지배층에 편입한 신흥 세력이 '문화소비'로 자신들의 지배력을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돈 있는 사람들이 엘리트 집단에 들어가는데 필요한 패스워드가 문화였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또 "미술품 거래라는 새 사업 영역에 뛰어든 상인에 의해 그림들이 점점 더 고급스럽고 화려해졌으며 자본주의 시장의 마케팅 경쟁처럼 미술이 생산되고 소비됐다"며 "르네상스 미술을 서구 상업문화의 역사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